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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외 더 많은 소국 발견으로 가야사 공백 메우다
가야 외 더 많은 소국 발견으로 가야사 공백 메우다
  • 김선욱 기자
  • 승인 2022.07.13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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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전고분군` 통해 다라국 실체 확인
가야 문화 수준ㆍ국제성 잘 보여줘
`성산토성` 다라국 지배자의 성
가야 토목 기술 면모 알 수 있어
`삼가고분군` 경남 내륙 최대 규모
무덤 변천 과정 한눈에 볼 수 있어

가야 유적 발굴 현장을 가다 ④ 합천 가야고분군
후기 가야의 한 나라인 다라국을 대표하는 옥전고분군. 이 고분군은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조성돼 있다.
후기 가야의 한 나라인 다라국을 대표하는 옥전고분군. 이 고분군은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조성돼 있다.

가야 역사는 발굴을 통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진 역사는 지금까지 문헌의 증거 부족 때문이었다. 가야사 복원이 힘을 받으면서 도내 중심으로 가야사 발굴 현장에 눈길이 더 가고 있다. 도내 발굴 현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더 상세하게 기술될 가야사를 기대한다.

옥전고분군 M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
옥전고분군 M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

합천군에는 가야소국의 하나인 다라국(多羅國)과 삼가고분군 조성 집단으로 대변되는 또 하나의 가야소국이 존재하고 있으며, 핵심 유적으로 옥전고분군ㆍ성산토성ㆍ삼가고분군 등이 확인되고 있다.

가야사 연구는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고구려ㆍ백제ㆍ신라에 비해 문헌 자료가 매우 적어 연구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중국과 일본의 문헌 기록을 사료 비판을 거쳐 사용하거나 발굴 성과를 통한 고고학 물질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옥전고분군ㆍ성산토성ㆍ삼가고분군의 발굴 성과는 가야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여섯 가야 외에도 더 많은 나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가야의 우수한 문화 수준과 국제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옥전고분군은 문헌 기록 속 다라국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9월 함안ㆍ김해ㆍ고령ㆍ고성ㆍ창녕ㆍ남원의 가야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삼가고분군 돌덧널무덤에서 발견된 토기.
삼가고분군 돌덧널무덤에서 발견된 토기.

가야인의 국제 교류 증거 `옥전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은 후기 가야의 한 나라인 다라국을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조성돼 있으며, 다라국은 가야 여러 세력의 문물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확장을 꾀하는 신라,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백제의 각종 물자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이점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옥전고분군은 가야의 여러 세력이 넓은 분지를 기반으로 각 세력의 중심지 구릉에 고분군을 조성했던 것과 달리 다라국 세력의 성장 배경이 됐던 강이 잘 바라보이는 높은 지대에 조성돼 지배층의 지위와 권력을 드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85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합천댐 수몰지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다량의 토기ㆍ갑주ㆍ금동제품 편이 채집되면서 중요성이 인식됐고, 이후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대형 고총고분부터 소형분에 이르기까지 182기의 무덤과 유물 3500여 점이 확인됐다.

특히, 대표 무덤인 M3호분에서는 무덤 바닥에서 관 받침대로 사용된 121매의 주조철부가 출토됐는데, 이는 피장자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와 함께 발견된 용봉황무늬고리자루큰칼 4자루를 비롯한 큰칼 10자루, 금동장식투구, 비늘갑옷, 금귀걸이, 금동말갖춤 또한 같은 시기 한반도 내의 어떤 최고 지배자급 무덤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준다. 옥전고분군에서 확인된 다양한 무덤 양식과 출토 유물은 가야가 중국ㆍ한국ㆍ일본에 존재했던 여러 나라들과의 교류를 잘 보여준다.

용봉황무늬고리자루큰칼은 백제 내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옥전 M11호의 굴식돌방무덤과 금동관모, 금귀걸이, 귀신무늬와 개구리무늬가 있는 손칼, 연꽃잎 모양장식 등은 백제와의 교류 관계를, 앞트기식 돌방무덤인 옥전 M10호분과 출자형금동관, 물고기꼬리모양말띠드리개, 토기 등은 신라와의 관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자료이다. 한편 옥전 28호분과 68호분에서 출토된 판갑옷은 일본열도에서 유입된 유물로 생각되며, 이와 반대로 일본 와카야마시 오타니고분에서 출토된 말머리가리개는 가야지역에서 만든 것이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마모토현 에다후나야마고분, 덴사야마고분 등에서는 합천 옥전고분군의 것과 유사한 금귀걸이가 출토돼 두 지역의 교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옥전 28호분 출토 금귀걸이는 가야 귀걸이를 대표하는 유물로 일본 금속 공예에 영향을 준 점 등을 인정받아 지난 2019년 12월 26일 보물 제2043호로 지정됐다.

대외 교류와 관련해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옥전 M1호분 출토 로만글라스이다. 이 유리제 그릇은 서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가야의 국제성을 잘 보여주는 핵심 증거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옥전고분군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다른 6개 가야고분군과 함께 우리나라 삼국시대 한 축을 이뤘던 가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성산토성 동쪽 구간 석성 전경.
성산토성 동쪽 구간 석성 전경.

다라국 지배자의 성 `성산토성`

옥전고분군 남쪽에는 옥전고분군에 묻힌 지배자들이 살았던 성, 성산토성이 있다. 해발 17∼53m의 나지막한 독립 구릉이지만, 평탄면을 형성한 정상부와 황강 변 수직 절벽으로 구성된 천혜의 요새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1.1㎞이며, 북쪽ㆍ동쪽ㆍ남쪽 구간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도록 쌓았다. 가장 낮은 남서쪽은 골짜기를 이루며 황강으로 열려 있어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가 형성돼 있다.

성의 위치는 황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관문에 해당한다. 황강 물줄기를 활용하면 경남 서부 내륙인 합천ㆍ거창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고, 낙동강 물줄기 상류를 이용하면 고령과 대구로, 하류를 이용하면 창녕ㆍ의령ㆍ함안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을 지닌 곳이다. 사실 근래까지도 성산토성의 남쪽에 위치하는 성산 나루터는 낙동강에서 합천으로 오가던 나룻배의 기착지였으며, 합천지역 생산품들을 낙동강 하구로 보내던 곳으로 내륙 수운의 요충지였다.

성산토성은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에 걸쳐 시행된 문화재 조사 결과 성산토성의 서쪽은 가파른 절벽을 그대로 이용했고 남쪽과 동쪽ㆍ북쪽은 흙과 돌을 이용해 성벽을 조성했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단순히 `토성이다, 석성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옥전 고유의 축성 기술로 쌓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즉 석성과 토성이 함께 확인되는 토석양축성(土石兩築城)이다. 이러한 토성과 석성의 축조공법을 통해 토성에서 석성으로 변화하는 가야의 성곽 발전 과정을 연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야 토목 기술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구릉 정상부에는 성벽 안쪽으로 가야 시기 제사유구, 백제와 관련성이 주목되는 5동의 대벽건물(大壁建物), 인공 도랑시설(溝)이 확인됐으며, 성산토성 동쪽 정상부에서 이어지는 구릉의 가장자리에서 4동의 가야 시기 주거지가 확인됐다. 대벽건물은 공주의 정지산, 공산성, 부여 군수리 유적 등 백제 고도를 중심으로 확인되며, 고령 연조리 대가야 궁성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삼가고분군 M69호분ㆍM70호분 전경.
삼가고분군 M69호분ㆍM70호분 전경.

땅 속에서 찾은 또 하나의 가야 `삼가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은 경남 내륙지역 최대급 규모의(면적 53만 5161㎡) 고분군으로 세계유산 등재 추진 중인 합천 옥전고분군과 더불어 합천을 대표하는 가야무덤 유적이다. 고분군은 1∼7세기 남강을 통한 문화 교류를 배경으로 성장한 세력의 고분군으로 크고 작은 봉토분 330여 기가 확인됐다. 이 고분군은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가야 존속 시기 동안의 무덤 변천 과정이 모두 확인돼 경남 서부 내륙지역 가야 정치체의 성립, 성장, 발전, 소멸의 모든 과정과 와질토기, 도질토기, 소가야 양식 토기, 대가야 양식 토기로의 점진적인 변화 양상이 뚜렷해 이 지역 가야 세력의 문화적 변화 모습과 특정 가야로의 문화적 귀속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삼가고분군에서는 삼가지역의 독특한 무덤 구조인 삼가식 고분이 확인되고 있다. 삼가식 고분은 하나의 봉분에 복수의 매장부(석곽묘)를 연접해 확장 조성한 다곽고분으로 중소형 봉토분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으며, 삼가식 고분의 분포 범위를 통해 당시 존재했던 소국의 권역을 추론할 수 있어 가야 서부 내륙지역 정치체의 규모와 존재 양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고분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삼가고분군은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소가야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 묘역으로 판단되며, 삼가면 일대는 고성 송학동고분군, 산청 중촌리고분군과 함께 소가야의 핵심 세력들이 축조한 것으로 고분의 분포 범위 및 고총고분군의 규모만으로도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나 함안 말이산고분군과도 비교할 만하며, 가야와 신라의 역사 변동 과정을 밝혀줄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윤철 합천군수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와 발맞춰 옥전고분군이 세계인이 찾는 역사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단장해 나갈 것이며, 성산토성과 삼가고분군도 지속적으로 복원 정비 및 연구를 수행해 유적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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