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0:36 (금)
출가이야기 ⑨
출가이야기 ⑨
  • 경남매일
  • 승인 2022.07.0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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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산사정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산사정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출가를 말할 때 보통 순연(順緣)과 역연(逆緣)으로 나뉜다. `순연`이란 말 그대로 공덕이 갖추어져 순조롭게 출가하는 것이고 `역연`이란 인생의 풍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출가하는 것을 이른다. 대개는 역연으로 출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해결이 안 되는 인생의 고뇌를 마주할 때 세속의 인연을 끊기가 쉽기 때문이다. 반면 좋은 환경에서는 굳이 세속을 벗어나 출가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령 도를 닦겠다는 좋은 마음에 순연으로 출가하더라도 힘든 상황을 만나면 환속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역설적으로 역연으로 출가한 이는 힘든 수행 생활도 오히려 잘 견디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어려움이 닥쳐도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난 속에도 기회가 있는 것을 일러 절집에서는 `역연의 공덕`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20대 중반 주위로부터 몇 번의 출가를 권유받았으나 매번 사양하였다. 그 이유는 출가자의 경우 세상에서 좌절한 낙오자이거나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염세주의자일 거라는 부정적인 선입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출가를 단행했다.

그러나 절집 생활에 대한 준비와 정보 없이 출가한지라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다. 또한 법당에서 예불할 때 대중들이 함께 독송하는 웅장한 반야심경 소리가 나에게는 알지 못할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렸고 원래 있던 두통만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송광사로 출가한 지 닷새째 되던 날 절 살림과 행자를 관장하는 원주스님께서 "오늘 오전 중으로 2000배를 하면 속가의 옷을 벗고 정식 행자가 된다"고 하셨다.

절 생활에 적응은 잘 안됐지만 이천 배라도 하면 좀 나아지길 기대하며 오전 안에 과제를 마쳤다. 그러나 심경의 변화는 없었고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본인의 `인생이 갈 데까지 갔다`고 여겼는데 아직 끝은 보이지 않았다. 절집에 발을 들였지만 `이 길도 나의 길은 아닌가`라고 낙담하며 포기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원주스님께 하산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스님은 "조금만 더 견뎌내면 스님이 될 터인데.."라며 아쉬워하셨다.

그때 마침 송광사에는 학승(學僧)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講院)이 있었고, 그곳에는 삼일원에서 인연을 맺은 정여스님의 제자 중 한 분인 도성스님이 면학하고 있었다. 스님은 방학 때 삼일원에 가끔 왔는데 그때 서로 차도 마신 일도 있고 해서 얼마간의 친분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도성스님을 찾아갔더니 스님은 몇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웃으시며 "심 수좌는 다시 절집에 올 겁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작별을 고했다. 출가한다고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친구들에게 다시 못 볼 것처럼 하였는데 다시 돌아가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모님과 친구들은 아무런 타박 없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동안 부산의 본가에 있으니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 마냥 다시 답답해졌다.

그래서 해운대에 위치한 해운정사에 가서 조실(祖室)이신 진제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곤 했다. 스님의 정통 선법문(禪法門)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화두를 깨우치면 생사 문제와 모든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그 말씀에 희망을 걸고 여러 번 법회에 참여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기회를 보아 큰 스님을 뵙고자 원주실에 신청하였고 친견이 허락됐다. 스님께서는 나의 이런저런 얘기를 경청하시더니 "몸이 좋지 않으면 도 닦기 힘드니 그 전에 몸을 건강히 해야 한다" 하시며 우선 몸을 잘 치료할 것과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화두(話頭)를 내려주셨다.

`화두`란 불가에서 자기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수행 방편 중 하나이다.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진리의 문답 가운데 제자는 어느 대목에서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깊게 사유해 풀게 되면 자기 본성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스님이 내려주신 화두인 `부모에게 나기 전 참 나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깨우치면 마음의 병도 낫고 몸도 좋아진다는 말씀이었다.

이후 부모미생전 화두를 해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고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다시 입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제 큰 스님의 스승이신 향곡스님의 부도(浮屠)가 있는 부산 기장의 묘관음사로 향했다. 묘관음사로 간 이유는 성철 큰스님의 도반이시자 당대의 대 선지식으로 명망이 높았던 향곡 큰스님의 법향을 느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출가와 달리 두 번째 출가는 부모님께 간단한 동의만 구하고 집을 나섰다. 나의 20대는 인생의 행로를 두고 세간과 출세간을 오가는 방황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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