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고 서회인 씨 유족 보상금 내놓아
부마항쟁 고 서회인 씨 유족 보상금 내놓아
  • 이병영 기자
  • 승인 2022.05.2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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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김영자 씨 재단 기증
집안일 도맡은 착한 딸
"어려운 분께 쓰였으면"
김영자(고 서회인 씨 모친ㆍ왼쪽 다섯 번째) 씨가 보상금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기증한 후 재단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자(고 서회인 씨 모친ㆍ왼쪽 다섯 번째) 씨가 보상금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기증한 후 재단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해 `상이를 입은 자`로 판정받은 고 서회인 씨에 대한 보상금이 25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전달됐다. 

고(故)서회인 씨 모친인 김영자 씨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뒤 장기간 후유증을 앓다 숨진 서 씨의 유족에게 지급된 국가 보상금을 재단에 기증했다. 

이날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영자 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학업 생활도 열심히 하는 명랑하고 착한 딸이었다"고 서씨를 회고하면서 "이번 보상금이 주변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주여상(현 동주여고) 야간부 2학년이던 고 서회인 씨는 지난 1979년 10월 17일 오후 9시 50분께 부산 중구 대청동(당시 한국은행) 인근 육교에서 귀가하던 중 경찰이 쏜 사과탄(소형 최루탄) 파편에 얼굴을 맞았다. 곧바로 침례병원에 입원한 서씨는 눈, 귀, 이마 등이 찢어져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때의 여파로 서씨는 오랜 세월 폐 질환을 앓았다. 유족은 사고 이후 서씨가 폐를 다쳐 기침이 많아졌고, 병원 치료가 끝난 뒤에도 몸 여기저기에서 최루탄 파편이 나왔다고 증언했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981년, 결핵 판정을 받은 후 3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서씨는 결핵에 시달려 사회생활은 물론, 가사 노동조차 쉽지 않은 몸 상태로 평생을 보냈다.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적잖은 시간은 흘렀지만 피해자 명예회복, 피해자 보상 등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여전히 미비한데 국가가 아닌 개인의 선행은 의미있는 점"이라며 "국가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분들의 명예회복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한 예우를 위한 법률을 조속히 마련해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과 민주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기증받은 보상금은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 및 관련자 지원사업을 위해 유용케 쓰여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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