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52 (토)
가야불교를 넘어 지평을 넓히다
가야불교를 넘어 지평을 넓히다
  • 도명 스님
  • 승인 2022.04.25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명 스님 산사정담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가야불교를 연구하면서 가야사를 알게 되고, 가야사를 공부하다 보니 고대사 전반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고대사는 외침과 사대주의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가야사가 심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를 침략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정한론`의 근거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였다. 때문에 그것을 사실로 조작하려면 가야 초기의 기록과 유물, 유적 등 근거를 지워야 했다.

`가야 초기 기록의 불신` 풍토 속에서 서기 42년 수로왕의 가락국 건국과 서기 48년 인도의 허왕후 도래라는 역사적 사실도 함께 매몰됐다. 가야불교는 가야역사, 문화의 일부이기에, 뿌리인 가야가 사라지면 당연히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가야불교를 복원하려면 먼저 가야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렇게 가야사 정립과 가야불교 복원이라는 명제로 만나게 된 분이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신 이덕일 박사님이다. 이 박사님과는 수년 전부터 인연이 되었는데,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 본성` 특별전을 계기로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 전시회는 가야권역의 중요한 유물을 모았고 특히 허왕후릉 옆의 `파사석탑`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고유제까지 지내고 서울로 모셔갔다. 특별전에는 대가야의 중심지 고령에서 출토되어 금관가야의 구지가 및 건국설화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거북 문양`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합` 등이 새겨진 `흙방울 토기`도 함께 전시됐다.

그런데 얼마 후 메이저 언론들은 파사석탑과 흙방울 토기가 검증되지 않은 유물이라며 신화 속의 역사로 치부하였다. 문헌과 유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이것을 부정하는 언론들과 그것을 묵과하는 사학계의 실상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가야불교연구소는 이에 대한 반박 성명서도 발표했고 이덕일 박사님의 가야사 바로잡기 활동과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또 2021년 가야문화진흥원과 경남도의회가 주도한 가야사 정립 학술토론회에서도 기조강연을 맡아 힘이 되어 주셨는데 고마운 일이다.

한동안 가야불교 탐색을 하면서 기존 역사연구자들이 철옹성처럼 구축해 놓은 가야사와 가야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과 해석의 한계를 절감하고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대표 대학인 인제대학교가 진행하는 `그랜드 가야 포럼`에 참가하게 된 것은 새로운 연구 방법을 배우는 기회였을 뿐 아니라, 가야불교의 탐구 방향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인제대 융복합센터의 `그랜드 가야 포럼`은 조형호 부총장님과 박재섭 전 도서관장님이 주축이 되어 꾸려진 학술포럼이자 학부생도 교양과목으로 듣는 공개수업이다. 우연한 기회로 두 교수님이 여여정사 포교원에 직접 오셔서 허왕후 혼인길에 대한 필자의 설명을 들었고, 며칠 후 포럼에 합류해 달라는 연락을 주셨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던 상황에서 `가야사의 발굴과 정립`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포럼에 연구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다.

2020년 1차부터 16차까지 포럼을 진행하면서 필자뿐 아니라 향토사학자 정영도 선생,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 회장님, 김우락 김해문화원 부원장 등 지역에서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원류를 찾기 위해 노력해온 재야 전문가들이 주제발표를 했다. 기존 역사학계에서도 이동희 인제대 교수, 백승옥 국립해양박물관 학예실장, 전지혜 부경대 박사 등이 참여해 가야사 관련 발제를 했다.

전국에서도 이렇게 향토사학자와 대학 및 연구소의 역사학자가 번갈아 가면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포럼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강단과 재야가 서로의 입장을 알아가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그동안 상아탑의 권위 앞에서 명패 없는 연구자로서 위축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랜드 가야 포럼`은 자신감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소 부족한 연구의 결과물을 전문가들에게 검증받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특히 포럼에서 접한 가야의 최근 고고학적 연구 성과들은 가야사의 변천 과정과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 학계의 통설로 굳어진 몇 가지 사안에서는 교단의 연구자들이 좀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가야사의 경우, 문헌과 유물이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삼국에 비해 연구자들이 상당히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애정이 있는 `지역밀착형` 연구자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와 정보는 가야사의 빈 부분을 메우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