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수당 시대의 역학
위진수당 시대의 역학
  • 이 지산
  • 승인 2022.03.30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산역설<志山易說> 주역 연구가 이 지산

위진수당시대의 역학은 한역의 번쇄한 학풍과 상수역을 배격하고 주역을 노장현학(老莊玄學)과 결합시켜 노자의<도덕경>으로 역을 해석하였다. 이는 역의 새로운 해석경향으로 그 연구방법의 참신함과 연구성과의 진전으로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역학은 크게 네 가지 경향으로 발전하였다. 첫째는 한역을 계속 계승하여 상수로 역을 해석하는 경향이다. 조위(曹魏)때의 점술가인 관로와 동진의 손성은 주역점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노장현학을 극력 배격하고 한역의 전통고수와 보호에 힘썼다. 특히 당나라 때 이정조는 <주역집해(周易集解)>를 편찬해 주역을 순수한 복서(卜書)로 보았다. 둘째는 노장현학으로 역을 해석하는 경향이다. 이는 한역의 상수역학을 폐기하고 현학의리파(義理派)를 형성했다. 주요 인물로는 왕숙, 왕필, 한강백 등이다. 당나라 때의 의리학파 공영달은 왕필과 한강백의 주(注)에 소(疏)를 단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 상수역의 역상을 수용함으로써 의리편중에서 탈피하려했다. 의리학파의 역학은 주역에 함축된 철학사상을 현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중시했다.

셋째는 역학을 불교와 결합시키는 경향이다. 한대 중엽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는 남북조시대에 크게 성하였다. 이때 불교도와 불학연구가는 주역의 현학론을 끌어들여 불교이론을 해석함으로써 중국인에게 생소했던 불교의 교의(敎義)를 해설했다. 남조시대의 양무제, 소연의 역 해석은 불교와 주역을 한데 뒤섞어 얽는 경향을 보였다. 종밀과 이통현 등은 역으로 화엄종의 교의를 해석해 유교와 불교의 상호보완이 역학에 끼친 영향이 컸다. 불가의 역은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에 구애받지 않고 다 끌어다 썼다.

넷째는 역학을 도교(道敎)와 결합시키는 경향이다. 한나라 때 황로파(黃老派)는 역학을 소개해 도가황로와 역학이 발전했는데 그들은 노장현학으로 역을 해석했다. 도가는 도교와는 다르지만 중국교유의 종교로 동한 순제이후 창립되어 위진남북조 시기를 거쳐 분화 발전해 당나라 때 흥성하였다. 이때 주역은 유불도 3교가 융합되는 상황으로 도교도 주역이론으로 교의를 선전해 방술(方術)의 근거로 삼았다. 이때 위백양의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가 나와 당대의 도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교와 약학의 결합도 상수역이나 의리역의 어느 한 쪽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했지만 도교역학은 주로 상수역을 많이 흡수했다. 그러나 도가사상은 정이천의 <역전>에 의해 배격됨으로써 주역은 공자유가본연의 역학으로 재정립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