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
  • 도명 스님
  • 승인 2021.12.20 2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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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사정담(山寺情談)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역사란 과거 모든 시간을 통틀어 일어난 일들이다. 이러한 사건을 학문으로 체계화한 것을 역사학이라 하며 이를 대표하는 학문은 문헌 사학과 고고학이다.

 그러나 이 두 학문으로 역사를 모두 포섭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는 기후 환경 그리고 지질뿐만 아니라 생활방식, 언어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종합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란 `융복합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5일 KNN 방송에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과학으로 본 허황옥 3일>을 방영하였다. 다큐만 30편 이상 만든 진재운 감독이 연출하였는데 역사를 과학적이고 융ㆍ복합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새로운 시도였다. 필자도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

 이번 다큐의 주제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수로왕의 비인 `허왕후`의 도래다.

 `가락국기`에는 공주 허황옥(허왕후)이 결혼을 위해 인도 아유타국을 출발할 때부터 가락국에 도착하여 본궁까지 온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가락국기의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학자들은 허왕후의 도래와 그녀가 올 때 싣고 온 `파사석탑`의 역사성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역사학계에서는 `기원 전후 인도에서 가야까지 올 수 있는 선박과 항해술이 없었다` 또는 `김해 김씨가 자기의 시조들을 높이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인도의 공주를 창조했다` 등의 주장으로 허왕후를 신화 속 인물로 치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허왕후 도래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만일 그녀의 도래가 사실이 아니라면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스님의 신뢰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서기 48년 그녀가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은 근본 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수로왕의 가야 건국 42년도 신뢰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로 구성된 가락 종친들이다. 이들의 족보에 시조모로 기록된 허왕후가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면 가락 종친들은 근본 없는 부평초 같은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허왕후 도래`는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방송에서는 그녀가 살았던 기원후 1세기 당시, 인도에서는 수백 명에서 최대 1000여 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배들이 대양을 항해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그녀를 비롯한 40여 명의 일행이 타고 온 길이 50m 배는 당시에 흔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방송은 인도에서는 기원전 4세기부터 대양 항해가 가능했던 까닭에 허왕후가 가락국에 온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당시 해풍과 해류의 흐름을 복원하여 삼국유사의 허왕후 도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또한 허왕후가 가락국에 올 때 그녀를 처음 조망한 망산도(望山島)가 매립 전 진해 용원 앞바다에 있던 견마도(牽馬島)임을 논증하였다. 다큐에서는 지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2000년 전 가야의 지형을 복원했다.

 이번 다큐는 당시에는 해수면이 2.5m 이상 상승해 현재 망산도라 불리는 `말무섬`은 바다에 잠겨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또 다른 망상도 후보지인 `전산`, `칠산`, `욕망산` 등은 `가락국기`에 나오는 망산도의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와 함께 역사적 기록과 고지형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만산도`(滿山島)라 불렸던 섬이 망산도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

 한편 <명월사 사적비>에는 수로왕이 허왕후와 함께 초야를 치른 명월산 서쪽에 신국사를 짓고 동쪽에는 진국사를 그리고 산 중앙에는 흥국사를 지었다고 나온다. 다큐는 아직 검증 단계가 남았지만 신국사지와 진국사지로 추정되는 사지(寺址)의 위치가 사적비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다큐 제작진과 필자가 함께 역사적 흔적을 찾아가면서 깨달은 사실은 선조들의 기록은 매우 정확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다큐에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은 인도 철의 이동 경로였다. 박장식 전 홍익대 교수는 고대 인도의 덩이쇠와 가야의 덩이쇠가 동일한 제작 기법을 공유했는데 이는 상호 교류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기원 전 인도의 철기 제작 기술이 인도네시아를 거쳐 대만까지 전해진 사실과 철을 생산한 곳들에 `가야`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가야와 철은 불가분의 관계로 철의 교역로를 통해 허왕후가 왔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이렇듯 2000년의 깊은 잠을 자던 `가야`와 `가야불교`는 과학과 영상이라는 현대적 도구를 통해 다시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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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 2021-12-21 15:41:48
웅혼한 가야사의 부활을 응원합니다.
도명 스님의 밝은 역사길 인도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