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02 (금)
벗지 않아도 벗어지는 것들
벗지 않아도 벗어지는 것들
  • 하성자
  • 승인 2021.12.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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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화분을 가꾸면서부터 식물의 이치를 배우고 있다. 식물들도 살아있는 한 순환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뿌리에서 돋아난 한 줄기에서 살지만 잎들은 제각각이다. 막 돋아나는 연두 잎이 있는 반면 왕성한 초록 잎들과 그 기세에 눌렸는지 두어 개씩 말라가는 갈색 잎도 주기적으로 생겨난다. 달랑달랑 버티지만 손만 살짝 대도 떨어지는, 초록이 사라져버려 누렇게 뜬 채로 모기 눈알만큼 남은 물기로 연명하다가 끝내 줄기와 결별하고 마는 잎들을 볼 때마다 짠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만약 새잎이 생기지 않는다면 저 잎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켜보는 아픔이 더 큰 때가 있었다. 끝까지 버텨라, 응원하지만 자연이 거둬 주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이파리는 사그라져 떨어지곤 했다. 식물 키우는 재미보다 잎 떨어지는 슬픔, 낙엽은 그야말로 이파리 목숨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은 그 식물이 살아 있고 원래 그 뿌리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였다. `아, 저 잎이 지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손톱 깎는 것과 매한가지구나` 싶어 그 뒤로는 메말라가는 잎들을 잘라주곤 한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벗어 버리는 피부의 무게는 48㎏ 정도이고 1000번 정도 새로 갈아입는다고 한다. 피부가 벗겨지면서 약 4주에 한 번씩 새 피부로 모두 바뀐다고도 하는데, 생각보다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사람의 머리카락도 자라는 길이가 약 563㎞나 된다. 빠지고 새로 나는 개수와 이발로 잘라내는 양도 꽤 될 터이고, 손톱은 한 손가락 기준 3.7m라고 하는데, 손발톱이 깎이는 량을 추산해보면 그 또한 상당할 것이다. 평생의 기준을 70세로 잡은 명확하지 않은 민간의술 자료지만 근사치로 추정해도 꽤 흥미로운 정보라서 눈이 끌렸다. 무심히 버려져 온 나의 일부들, 머리를 자른다거나 손발톱을 깎는 일, 때를 씻는 일이 통증이나 아픔과 무관하고 그들이 섭리에 따라 저절로 벗어지는 것이란 사실은 내가 위로받기에 충분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일생동안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버텨야 산다. 화분에 심겨진 식물처럼 좁게 제한된 범위만 주어질 때 식물이든 사람이든 살아야만 하고 최소한 생장해야만 한다. 겉치레를 벗지 않으면 좀체 견디기 힘든 생존의 법칙, 결국 본연을 이끄는 법칙은 의식적으로 벗지 않아도 벗어지는 것들로 하여금 적절한 상태로 삶을 유지하게끔 이끄니 순명이 지혜이리라.

 매 순간 마음에다 새잎을 틔우고 낡은 잎을 떨구어내는 일은 순명의 이치보다 스스로의 의지로써 해내야 하니, 그것이 `인생이라는 중량`이 되는 것이다. 수시로, 혹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 경우 일주일, 한 달, 일 년이라는 단계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분노나 아픔을 삭이다가 마음에 병들이지 말고 식물들이 잎 하나 떨구듯 초연히 벗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벗지 않아도 저절로 벗어지는 것, 마음속 응어리가 저절로 벗어지랴, 의지로써 벗어내야 할 삶의 막중한 과제이리라. 그러한 순명의 이치를 들여놓아 주실 속 깊은 가호를 기대하며 오늘도 가뿐하게 길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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