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9:55 (금)
미투 운동 그 후
미투 운동 그 후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12.0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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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미투로 문화계ㆍ정치계 휘청
추행리스트, 권력자 뒷면 밝혀
가해자 전 인생 통째로 추락해
거짓 미투 고백 여야 조심해야

2018년 이후 성폭력에 `미투(나도 당했다)`가 붙어 많은 `전설`이 무너졌다. 그들의 왕국에서 추한 몰골을 드러낸 가해자의 속살마다 환멸이 어른거렸다. 문화계가 휘청거렸고 정치계에 폭탄이 떨어졌다. 성폭력 피해 사례가 사회 무대에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 고운 시로 시심을 자극했던 고은 시인이 뱉어냈던 몹쓸 언어유희가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무대에 작품을 올려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이윤택 연극연출가가 놀렸던 손 행위가 부끄러웠다. 잘생긴 배우 조민기 씨가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했던 행위는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속살이 드러나면 희한한 자극을 받는다. 미투로 드러나는 속살은 생선 비린내보다 더 역겹다.

 미투 운동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많다. 사람은 권력에 취하면 반드시 부패의 잔을 들이킨다. "내 잔이 넘친다"며 문화계 권력자가 휘두른 칼에 많은 꽃잎이 떨어졌다. 아스라한 기억을 비집고 토해 놓은 성추행 고발은 문화계 전반에 오물처럼 붙었다. 아스라한 기억이 아닐 수 있다. 아직도 뇌리에 또렷이 박혀있을 기억이다. 차마 그 아픔을 누가 떨칠 수 있을까. 그래서 추행리스트가 블랙리스트보다 더 험악하다. 추행리스트가 드러나 더러운 권력자의 면면을 봤던 건 다행이다. 자신의 아픔을 폭로한 행위는 거룩하다. 사람은 전설을 믿을 때 풍요로운 삶을 산다. 사람은 전설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전설을 듣고 살 만한 세상을 꿈꾼다. 전설이 없으면 이 세상은 휑뎅그렁하다. 하지만 미투는 보통 삶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우리 영웅 뒷면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전설 무상을 안겨줬다.

정치권에서 미투의 위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앞자리에 있던 지사도 미투로 사라졌다. 권력에 취해 휘두른 더러운 손이 자신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됐다. 정치권에서 미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투 운동 이후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왔다. 세상 전부를 바꾸지 못해도 우리의 삶이 달라졌다. 피해자의 회복에 우리의 마음이 조금씩 담겨 갔다. 피해자가 바로 우리라는 인식 감수성이 조금 높아졌다.

미투에 무너진 그들의 삶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작은 행위가 위대한 것을 일깨워줬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자주 잣대에 대봐야 한다. 그 행위가 흑과 백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인생의 전반부에 꽤 모양을 갖춰 산 사람들이 중ㆍ후반기에 추락하는 모양을 보면 뒷맛이 씁쓸하다. 끝이 아름다워야 그 과정까지 아름답게 품을 수 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온 화두는 `끝이 아름다워야 한다`로 새길 수 있다. 끝없이 추락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의 과정까지 통째로 진공상태가 돼 안타깝다. 삶을 순간순간 돌아보고 그 퍼즐을 맞춰 전체 그림으로 완성한다는 진리가 새롭게 들린다.

마크 맨슨이 쓴 `신경 끄기의 기술`을 보면 소중한 것만 남기는 힘을 길러준다. "절대 긍정은 외려 독이 된다", "무조건 믿고 노력한다고 인생이 특별해지거나 행복해지지 않는다" 등 이런 구절을 읽으면 솔깃하다. 신경을 꺼야 인생의 중요한 것을 본다고 책장마다 친절하게 일러준다. 인생에서 미투 운동 덫에 걸리지 말 것을 경고하는 장이 들어갔으면 좋을 뻔했다. 전 인생을 통해 쌓았던 탑이 미투 하나에 무너지는 아이러니가 우리 주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가장 소담스러운 내용을 담는 기술은 마지막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귀착한다.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로 이름을 올려 삶이 가차 없이 무너져 내리는 허무함을 무수하게 봤다. 미투 운동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평생 쓴 아름다운 시의 향기를 미투의 악취로 덮어버린 삶의 아이러니가 여전히 묘하다. 내년 대선을 향해 가는 여야가 연일 상대 후보를 향해 `미투 고백`을 요구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과거 추한 행동을 들춰내 한방에 보내겠다고 벼른다. 미투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해 거짓 미투로 되레 칼끝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여야는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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