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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이야기
타이레놀 이야기
  • 오형칠
  • 승인 2021.11.2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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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칠 수필가
오형칠 수필가

 나이가 든 사람은 보통 단골 가게가 있다. 장사해 본 사람은 안다. 여러분도 즐겨 찾는 단골 식당, 미장원, 이발소가 있다. 우리 약국도 단골손님이 많다. 당국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은 후 열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오면 상품명인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약국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타이레놀 주세요.",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처음에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이런 식으로 타이레놀만 찾는 사람은 단골 가게를 찾는 사람처럼 그 타이레놀만 고집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음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J가 왔다. 이웃에서 전파상을 경영하는데 가끔 동네 새 소식을 전해준다.

 "사람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죽습니까?", "그럴 수 있죠" 이렇게 물으면서 약국 근처에 있는 큰 건물 사장이 죽었다고 했다. 놀라운 뉴스였다.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1년 전에 40억 원에 사들인 건물에 세든 병원 다섯 곳 중 네 곳이 이사 갔거나 옮길 예정이었다. 집세를 많이 올려서였다. 폐쇄적인 89세 노인, 그 옹고집이 빚은 참사였다. 그 후에 집세를 내렸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자, 대출받은 30억 원이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다시 타이레놀 이야기를 해보자. 타이레놀을 찾는 사람은 상품명이 다르면 다른 약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합니까?", "아니, 똑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은 몇 달째 품절이다. 김해는 외국인이 많다. 코로나 백신 주사가 외국인으로 확대되자 많은 외국인이 타이레놀을 찾는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순진하다. 특히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몽골, 네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희한하게도 외국인 다수가 타이레놀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서 달라고 한다. 진열대에 쌓아놓은 타 회사 제품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약은 타이레놀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90% 정도는 가져간다. 오늘 토요일, 아침에도 많은 외국인이 A사 제품을 가져갔다.

 "백신 맞고 먹는 약 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두말없이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도매상 C는 얀센사가 공장을 인도로 이전했다고 전해줬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타이레놀은 구경조차 못 한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자 약사회에서 홍보물을 제작해 약국에 배포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백산 맞고 먹는 약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 약국에 청각장애자가 가끔 온다. 이분들 특성은 귀가 아플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하며 항상 일방적이라 의사소통하려면 종이와 볼펜이 필요하다. 서로 답답해한다. 타이레놀만 고집하는 분들에게 89세 노인과 청각 장애인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다. 전국 약사들은 비슷하다. "어쩌면 저렇게 말이 통하지 않을까?"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람들은 타이레놀과 같은 약이라고 하면 순순히 가져가는 분들이다. 믿어주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제 코로나와 타이레놀이라는 말과 영영 안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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