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2:14 (토)
한번씩 복수가 아름다운 이유
한번씩 복수가 아름다운 이유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1.11.16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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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영웅들은 마른하늘에 내비치는 한줄기 소나기다.
영웅들은 흙수저 바람을 타고 높은 하늘을 차고 오른 사람이다.
세상에 대고 착한 복수를 한 사람들이다.

 `복수의 칼은 날렵하다.` 늦가을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아름답다. 돈이 거의 들지 않은 생활 속 휴가다. 위드 코로나로 열린 동네 도서관에 가면 행복한 사유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요즘 글깨나 읽은 사람들은 책을 통해 인생을 확 바꿨다며 유튜브 방송을 채우고 있다. 선선한 가을날 소설 읽기는 아름다운 유혹이다.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있으면 가을 단풍의 유혹이 엄습하지 못한다. 그 맛이란 게 유명한 맛집의 면발보다 쫄깃하고 그 시원하기는 겨울철 냉면보다 낫다. 책 속에서 만나는 작은 자들의 삶의 복수는 여름철 소나기를 맞는 기분이다. 김진명의 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이런 기분을 선사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경복궁에 일본 깡패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그 현장에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참상이 벌어졌다. 힘없는 나라의 국모(國母) 유해 곁에서 일본인 깡패들은 온갖 더러운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한 나라의 자존심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것도 모자라 짓밟아 버린 극악한 행동이었다.

 이런 추잡한 행동을 한 일본에 대해 복수의 칼을 든 책이 `황태자비 납치사건`이다. 한국인이 가부키를 관람하는 일본의 황태자비를 납치하는 발상은 통쾌하다. 일본 황실을 모욕하는 납치 사건은 100여 년을 훨씬 뒤로 물러가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겹치면서 마음 가운데 복수의 칼을 춤추게 했다.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명성 황후 살해 현장에 서면 독자는 분개하게 되지만, 일본 황태자비가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해 뼈저리게 아파하는 마무리에서 독자는 복수의 칼을 거두게 된다. 복수의 칼을 칼집에 넣을 때 복수는 더 시원하다.

 요즘 부는 금수저ㆍ흙수저 바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괴심을 끓어오르게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퍼질러 앉고 싶다.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세상에서 위를 보지 못해 어디를 봐야 할지 눈만 굴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주위에 간혹 나타나는 영웅들은 마른하늘에서 내비치는 한줄기 소나기다. 이런 영웅들은 흙수저 바람을 타고 높은 하늘을 차고 오른 사람이다. 세상에 대고 착한 복수를 한 사람들이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듯, 이런 영웅들이 `작은 자`를 깨워 영웅의 꿈을 꾸게 한다.

 숟가락 논쟁은 잊을만하면 다시 나온다. 무수저 출신이 어떤 분야에 정상에 서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삶의 결과다. 정상까지 가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영웅들이 다시 환한 미소를 띠는 장면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대리만족만 해도 기분이 좋다. 개천에서 기는 붕어, 가재, 개구리는 우리의 모습이다. 삶이 고달파도 신분 상승으로 가는 어로가 막혀서도 숟가락 색깔을 바꿀 수 있는 희망마저 꺾이면 안 된다. 우리 정치가 프레임 전쟁으로 소모전을 펼치면서 사회의 변화 현상들이 너무 빛을 잃었다. 사회가 선순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흙수저의 아름다운 반란이 자주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동맥경화증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진배없다.

 정치인들이 허무는 복수의 법칙을 보면 가관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흙수저의 표상이어야 한다. 모두가 대통령을 꿈꾸는 허망증에 빠지라는 게 아니라 후보는 금수저로 바꿔 보려는 꿈을 투영하는 대상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복수를 바라볼 때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분`들이 잔챙이로 보여서 서글프다. `그분`을 따라서 복수의 칼을 뽑으려는데 바로 그분은 없다. 가짜 금수저가 일렁거리면 복수의 맛이 싹 가신다.

 복수는 아름답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부끄럽게 하는 세상은 살맛이 넘친다. 칼을 겨눈 사람에게 따뜻한 손으로 맞서는 사람은 마음이 행복하다. 행복한 책 읽기로 올가을을 최고의 행복한 나날로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아름다운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부드러운 복수자가 많으면 우리 세상은 더 아름다운 하늘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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