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금 사기에 관한 단상
차용금 사기에 관한 단상
  • 김주복
  • 승인 2021.10.2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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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의 법률산책
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재산범죄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범죄는 아마도 사기죄일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1 사법연감`을 보면, 2020년 사기ㆍ공갈죄 1심 형사재판 접수 건수가 4만 9826건(전체 1심 형사사건 중 19.152%)을 기록하여 2019년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국민의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무에서 많이 접하는 사례는 차용금 사기(채무자가 금전을 빌리고도 변제를 하지 않아 채권자가 채무자를 사기죄로 형사고소 하는 사례)인데, 대부분 민사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상청구로 해결될 사안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변제능력이 없거나 고의로 변제를 회피하는 경우에는 채권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 믿고 형사고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사상 채무불이행이 곧바로 형사상 사기죄로 되지는 않는다. 차용금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금원 차용 당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변제능력이나 변제의사를 속여서(기망하여), 이에 채권자가 속아서 금원을 대여하였다는 사실`이 객관적인 사실로써 증명되어야 한다. 실무에서 고소인이 그 사실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고, 더구나 차용금 사기죄에 관한 고소장을 접수받은 수사기관(경찰, 검찰)이 모든 증거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여력이 현실상 없기 때문에 대부분 불기소처분(증거불충분)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한 구체적인 사례가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형사상 사기죄에 해당하는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즉,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금원을 차용하였다는 점을 판단하기란 어렵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2015도1809)은, `차용금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차용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차용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후에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다. 그러면, 채무자가 차용 당시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법원(2015도1809)에는, `피고인(채무자)이 자백하지 않는 한 ①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② 범행의 경위와 내용, ③ 거래의 이행과정, ④ 피해자(채권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법원(2021도7942)에서 선고된 판결이 있어 소개해 본다. 사안은 이렇다. 김씨는 이씨에게 "돈을 융통할 곳이 없는데 2000만 원만 빌려주면 한 달 뒤에 꼭 갚겠다"고 말하여 이를 믿은 이씨로부터 2000만 원을 송금받았으나, 김씨는 약속한 날에 돈을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기소됐다. 차용 당시 김씨는 월수입이 200만 원이 되지 않고 별다른 재산도 없는 데다 다른 채무가 3억 5000만 원에 달하고 있었다. 심리를 한 1심 법원은 `돈을 빌릴 당시 김씨는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당시 자력 부족으로 차용금을 약속한 날까지 변제하지 못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차용을 감행해 변제불능의 위험을 용인했으므로 A씨에게는 사기죄에 관해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김씨에게 유죄(벌금 500만 원)를 선고했다. 항소심 법원도 마찬가지의 판단을 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항소심을 파기환송 하였다. ① 소비대차 거래에서 대주와 차주 사이의 친척ㆍ친지와 같은 인적 관계, 계속적인 거래 관계 등에 의해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 지체나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차용 당시 구체적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차용 조건 등과 관련해 소비대차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 허위 사실을 말했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차주가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해 대주를 기망했다거나 차주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② 김씨는 실직 이후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차용일부터 1년 10개월 후이므로 차용 당시 변제 못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거나 그럼에도 차용을 감행해 변제불능의 위험을 용인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③ 설사 김씨가 변제불능의 위험을 인식ㆍ용인했다고 보더라도 이씨에게 `돈을 융통할 곳이 없다`라며 신용부족 상태를 미리 고지한 이상, 이씨가 변제불능의 위험성에 대해 기망을 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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