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미래
한글의 미래
  • 허영호
  • 승인 2021.10.0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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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이런 얘길 해 보자. 북아프리카 토착 민족인 베르베르인을 부모로 둔 꼬마 이야기다. 그 꼬마는 리비아에서 태어나 막 학교에 갈 무렵 전쟁으로 시리아로 옮겨 살다가 다시 난민이 되어 스위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가 선택하진 않았지만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나라들과 거기에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무엇일까. 언어다. 일차적으로 그는 베르베르 민족의 일원으로서 그의 민족어는 베르베르어다. 다음으로 그가 태어나 처음 접하는 모어(language matermelle)는 리비아어다. 그는 어머니가 가끔 베르베르어로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그가 처음 접한 언어는 리비아어가 틀림없다. 그의 모든 사고와 관습은 리비아어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리비아어가 익숙해 질 무렵 그는 시리아어에 적응하고 교육받아야 했다. 젖먹이 때부터 듣고 말했던 리비아어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으며 어두운 밤길을 걷듯 시리아어 사이를 헤매야 했다. 그의 운명 앞에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롭게 건너야 할 언어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건너야 했고 건너지 않으면 영원히 강 중간 어디쯤에서 허우적거릴지도 몰랐다. 그는 현재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공용어(주로 행정에 사용되는 하나 또는 여러 언어들)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문득 자신이 속한 국적에 대해 혼란을 겪을 때가 있다.

오래전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베르베르어로 시를 쓸 때 사막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베르베르인으로 태어나 평생을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시를 써 성공을 거두었지만 내면의 마지막 소리는 가슴 한 편에 묻어 둔 민족어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의 사유를 지배하는 까닭이다. 베르베르인 그 꼬마는 커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가치관의 혼란과 정체성의 갈등을 겪었을까. 마음 심연에는 베르베르어가 헤엄을 치고, 조국 리비아의 모어는 모유와 같은 향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고교 동창같이 잠깐 스쳐 갔지만 정겨운 시리아어, 그리고 평생을 함께 가야 할 스위스어. 그가 마음 둘 언어의 고향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어 대신 공용어(language officielle)라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미국만 하더라도 루이지애나주 멕시코주 등 많은 주들이 2~3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앞서 스위스는 3개 언어를 세네갈의 경우는 20개 언어 가운데 6개 언어를 국민어(language nationale)로 공인해 사용하고 있다. 민족어(民族語)가 모어(母語)가 되고 모어가 국어(國語)가 되고 국어와 공용어(公用語)가 일치되는 이런 언어적 축복을 받은 민족은 우리 민족을 빼놓고 나면 드물다. 5000만이 넘는 인구가 일 천년 가까이 단일 언어를 사용하며 <언어의 순결성>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말에는 <입말과 글말>이 있다. 일제는 우리의 글말을 없애기 위해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으며 김해 출신 한뫼 이윤재 선생도 그 희생자다. 언어는 관성의 법칙이 있어 한 번 상위언어로 굳어지면 하위언어나 소수언어의 소멸은 가속화된다. 세계 5000개의 언어 중 글말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100여 개 정도로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는 입말은 있되 글말이 없다. 이 틈을 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언어 제국주의의 건설을 위해 범국가적 정책을 펴고 있다.

냉전 시절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아랍문자 대신 러시아의 키릴문자 사용을 강제당했으며, 몽골의 민족주의자들은 몽골문자를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일단 사용 시작한 언어의 관성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키릴언어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했지만 유일하게 북조선만은 강제당하지 않고 한글을 사용해 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언어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한글 역시 그 위력 아래 잔뜩 움츠리며 오염과 훼손을 감수하고 있으며 심지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4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되살아나 오늘날 그 나라의 공용어로 우뚝 선 글말은 한글과 카탈루냐아어뿐이다.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스페인의 집요한 탄압에도 카탈루냐어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한글 역시 마찬가지다. 1446년 한글 반포 이후 1894년(고종 31) 11월 21일까지 한글은 국문이 되지 못했다. 한글은 조선을 지나 대한제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라의 공식 문자가 된다. 창제 450년 만의 일이다. 고종은 칙령을 내려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하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섞어서 쓸 것을 규정했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의 하나인 찌아찌아족은 그동안 아랍 문자를 변형한 자위(Jawi) 문자, 라틴 문자 등으로 찌아찌아어를 표기해 왔지만 2009년 한글을 그들의 글말로 선택하였다. 인도네시아에는 소수민족들이 사용하는 약 250가지의 언어가 있으며 이 가운데 찌아찌아족은 6만 명 정도로 이들을 포함해 찌아찌아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8만 명에 달한다. 이 선택은 제국주의 강압이나 종교포교, 이념 전파를 위해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민족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스스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각별한 의미를 가지며 세계 언어사에 획기적인 일이다. 세계의 모든 문자는 "지배계급의 권력의 확장과 상인들의 이익"을 위해 발명되었지만 오직 한글만이 "어린 백성을 가엾이 여겨…" 만든 문자다. 한글은 탄생부터 소수와 토착과 어린 백성들을 위한 숭고한 문자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가 `1989년 6월 한글 창제에 담긴 숭고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개인, 단체, 기관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그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제정한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상`, 정확히 말하면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이라고 지었겠는가. 우리 민족의 수난만큼 꾸역꾸역 살아오면서 어느덧 575돌을 맞은 한글날에 세종, 집현전의 학자들, 신미 대사, 최세진, 조선어학회, 찌아찌아족 등을 떠올리며 한글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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