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56 (금)
세상 모든 행복
세상 모든 행복
  • 이광수
  • 승인 2021.09.26 2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열린 창문으로 스며드는 산들바람이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실감케 한다.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던 바람결이 신선하고 상큼하다. 곱게 단풍 져 낙엽 지는 만추의 낭만을 즐길 생각으로 가슴 설렌다. 트렌치코트 깃 곧추세우고 사색의 오솔길을 걷는 고독한 산보자의 뒷모습은 상상만 해도 멜랑꼴리하다. 언제 끝날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친 심신이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어느새 적응이 돼버려 무덤덤해졌다. 다들 나름대로 생존방식을 찾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기준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 또한 각양각색이다. 치열한 생활전선에서 한발 물러나 방관자의 여유를 즐기는 필자는 코로나에 신경을 끄고 과민 반응하지 않는다. 인생 후반기를 관조하며 사는 삶이기에 방역당국의 방침대로 행동할 뿐이다. 얼마나 더 생을 유지할지 모르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아쉬운 버킷리스트를 어떻게 조화롭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가 고민이다. 다만 어떤 결과를 얻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아직도 뭔가를 꿈꾸며 산다는 것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그 꿈이 내 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해피엔딩으로 귀결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내일을 모르는 게 인생이니까.

행복하다는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다. 행복이라는 말의 함의는 관념적이며 현학적이다. 필자는 이런 거창한 이론적 담론을 떠나 평소 일상에서 무시로 느끼는 작은 만족감 정도로 그 개념을 한정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각자 나름대로 행복방정식을 갖고 있으며 그 행복의 키는 물론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행복이라는 평균적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될 만한 말이나 글 또는 멘토가 필요하다. 세계 위인전기나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자서전에는 자기인생의 터닝포인터가 되었던 책이나 위인을 꼭 언급한다. 필자 역시 수천 권의 명작과 위인전기를 섭렵하면서 삶의 교훈을 많이 얻었다. 물론 그 교훈이 교훈으로 그친 경우도 있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할 때 용기를 잃지 않도록 내 삶을 비춰주는 등대 같은 책들도 많았다. 그 책 속에 담긴 명언들을 가슴에 새기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질긴 삶을 이어왔다.

얼마 전 서재에 쌓여있던 5000여 권의 책을 폐기처분하면서 다시 읽어봐야 할 천여 권을 남겨두었다. 그중에서 <세상 모든 행복(The World Book of Happiness)>이라는 책을 엊그제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새삼 행복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은 세계 각국 100명의 저명 행복연구 학자들이 1000개 내외의 단어로 편집한 행복 메시지이다. 2011년 출간 1년 만에 영어, 불어, 독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한국에는 2012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2011년 당시 유럽연합(EU)의 상임의장인 헤르만 반 롬푀이 씨가 전 세계 국가 원수들에게 새해선물로 보내 큰 화제가 되었다. 벨기에 출신의 저널리스트 레오ㆍ보만스가 쓴 이 책에서 100명의 행복 연구 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의 개념과 조건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의 절대적 원천은 타인과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과 불행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도 갈 곳이 못 된다`는 말처럼 행복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행복의 조건에서 돈의 역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주의체제의 양면성 때문일 것이다. 돈은 삶의 필요조건으로 인간의 직접적인 행동기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화폐가치로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의 틀에서 소외되면 다들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물질문명이 낳은 부작용인 빈부격차의 심화는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세 번째는 행복이 유전적 기질에 의해 일정 부분 좌우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명이나 운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유전적 기질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나 상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생각이고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국민소득 1000달러 미만인 부탄이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보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으로 증명한다. 물론 이는 행복의 본질에 관한 주관적인 관점이어서 현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행복을 지레 포기하고 `아빠찬스`로 돌리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2030 세대의 운명론적 인생관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독서의 계절을 맞아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세상 모든 행복>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