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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⑦
`오래된 미래 국가` 구야국 그리고 김해 ⑦
  • 허영호
  • 승인 2021.08.0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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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허영호 김해문화원 부원장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토착세력 중 왕비를 지정하는 것은 중앙집권적 왕권 창출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왕비가 된 세력에 신성성이 부여되어야 한다.`(가야의 건국신화와 역사적 의미 논문 중에서 / 이연심 부산시청 문화유산과) 구간들 중에 한 가문을 선택하여 왕후로 삼기엔 수로로서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이방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선택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약간의 신화적인 요소 즉 온갖 풍파를 헤치고 가야 땅에 도래한 `불굴의 전사`의 의미를 가미했다는 것이다. 가야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여전사(女戰士)`의 출현도 이런 허왕후의 기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이런 신란한 주장도 있다.

`허왕후가 실제로 인도에서 왔다는 주장은 이종기라는 한 아동문학가의 탐사문 형식을 빌린 수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1977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역사이자 `국민신화`로 등장하게 된 것은 어느는 한 고고학 전공 교수의 치열하지 못한 학문 때문이다. 그 교수는 허왕후 신화를 구성하는 여러 설화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등을 살피는 노력, 즉 역사를 분석하는 학자로서 담당해야 할 제1의 과제 사료 검증을 전혀하지 않았다. 사이비 역사학의 이 같은 작업은 대륙에 붙은 반도라는 콤프렉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위대한 한민족`의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허왕후 신화만들기, 민족주의, 국민 콤프렉스 그리고 사이비 역사학 / 이광수부산외국어대학교)

즉 황옥은 물 건너온 것이 아니라 물 건너온 것처럼 보일 뿐이며, 황옥의 국민신화는 노 사학자의 과욕에 불과하고, 결론적으로 김병모 교수의 `황옥탈출기`는 말짱 뻥(?)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허명철 박사는 저서 <가락불교의 고찰>에서 `우리는 자기의 안태(安胎)를 보지 못했다 하여 낳아주신 분을 자기 어머님이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문서(文書)나 족보(族譜)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하여 자기 조상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해는 대가락국(大駕洛國)의 왕도(王都)로도 유명할 뿐 아니라 한국 최초의 불교 도래지로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그 가치가 이제 재평가 되어야 하며`로 밝혀 황옥의 아유타국 도래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 김병모ㆍ신정기에서 허녀황옥 발견, 허명철ㆍ파사석탑 분석, 이종기ㆍ명월사 사왕석에서 드라곤(뱀) 의 발견 등은 허황옥의 아유타국 출생을 뒷받침 하는 사실로 여전히 `신성성과 콤프렉스`의 대척점에 있다. 수로가 간신히 구간들을 제압하여 대장은 되었지만 여전히 뒷골목에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구간의 자발적 협조나 복종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신의 한 수가 필요했다. 이때 황옥이라는 여인이 패물을 잔뜩 가지고 나타나 결혼을 요구했다. 그 패물들을 두고 <삼국유사>는 <한사잡물(漢肆雜物) - 한나라의 여러 사치스런 물건>이라고 전한다. 이 한사잡물은 통치자금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황옥은 그 댓가로 수로와 대등한 권력을 얻게 된다. 씨도 좋고 밭도 좋아 부부간에 10남 2녀를 낳았다. 아들 셋만 남기고 나머지 일곱은 일찌감치 황옥의 오라비 장유화상이 하동 칠불암으로 데리고 가 머리를 깍여 중으로 만들었다. 권력을 두고 골육상쟁의 싹을 미리 없앤 조치리라. 그 절을 두고 일곱 부처가 났다고 해서 칠불암(七佛庵)이라고 했다. 황옥은 셋 중 둘(二子)을 자신의 성으로 해 줄 것을 수로에게 요구했고 수로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 이자가 오늘날 <김해 허씨의 시조>다. 한편, 수로의 딸 신녀(神女)공주는 왜의 야마대국으로 가서 여왕이 되었는데 히미코 여왕이다. 히미는 한자로 비미(卑彌)로 흔히 `비미 일을 잘 할까`처럼 비미는 "히미코 여왕이 귀신처럼 나라 일을 잘 하듯이 어떤 일을 잘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황옥이 가져 온 파사석탑(婆娑石塔)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삼국유사>에는 파사석탑에 대해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이 있고 그 질은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이 탑은 일명 진풍탑(鎭風塔) 즉 `바람을 진압하는 탑`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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