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34 (토)
여백이 있는 삶
여백이 있는 삶
  • 하성재
  • 승인 2021.07.12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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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몇 해 전 동아비즈니스리뷰에 키워드 하나로 지구촌 각 나라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 화제가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잔디깎기 기계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세계 최고다. 일본은 `로봇` 러시아는 `라즈베리`와 `핵탄두`, 인도는 `영화`, 북한은 `검열`이라는 키워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한국은 대표하는 키워드는 `일중독`이었다.

술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알코올 중독(Alcoholic)이라고 하듯이, 일중독(Workaholic)이란 어떤 이유 때문이건 일 외에는 자신을 지탱할 정신적인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마시면 바로 안정을 찾듯이 `일중독자`는 일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다가 일이 생겨야 비로소 생기를 갖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2일 개최된 제68차 유엔무역개별회의(UNCTAD)에서 우리나라가 `그룹A`(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으로 지위변경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이미 부자클럽이라고 불리는 OECD 회원국이 된 지도 20여 년이 지났고, 경제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경제의 외연이 커지고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사람들의 행복도 커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다른 듯하다. 과로, 스트레스, 일중독의 포로가 된 우리나라의 직장인의 30.4%가 소화기장애, 29,0%가 스트레스, 11.2%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 (잡코리아와 HR파트너스의 직장인들의 건강의식관 조사결과 2007), 그리고 34개 OECD회원국 중 한국은 최고의 자살률(2010년 33.5명)과 낮은 행복도(27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사가 "당신은 지금 알코올 중독 상태입니다"라고 진단을 내려도 좀처럼 받아들이질 않는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상태를 부정(否定)하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우리의 문화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 안 마시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합니까?"라고 반문한다.

일중독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 정도 일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인 일중독증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러한 일중독증의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래의 항목 중 8개 이상의 항목에 해당하면 일중독을 의심할 만하다고 한다. 자신을 스스로 진단해보자.

1. 퇴근 후에도 업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2. 일이 너무 폭주해서 휴가를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3.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일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4.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 안절부절해 한다.

5.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쟁의식이 강하고 일에 승부를 건다고 생각한다.

6.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

7. 언제 어디서나 일할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다.

8. 혼자 식사를 할 때 옆에 서류나 일감을 놓고 보면서 시간을 절약하려고 한다.

9. 매일매일 할 일을 빡빡하게 리스트로 만들어 놓는다.

10. 정말로 일하는 것을 즐기고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

여백이 전혀 없는 책을 상상해 보라. 빽빽하게 채워진 글자들이 읽히기는커녕 우리의 머리와 눈을 아프게만 할 것이다. 우리의 삶과 일에 있어 여유는 음식과 공기 물처럼 필수적인 것을 기억하라. 여유 없이 일을 진행해 가면 머지않아 우리는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어 갈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일정 속에 쉼을 우선적으로 배정해보자. 의도적인 전략 없이 지속적으로 여유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예가 없다. 일과 나머지 시간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분리를 분명하게 하라. 가능하면 일은 일터에 남겨두고 집으로 가져가지 말라. 우리들의 손뿐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일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도록 훈련하자. 그러면 책 속의 여백이 글자들을 돋보이도록 하듯이, 그 쉼이 우리들의 일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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