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4:20 (토)
나를 도닥 여준 가야금 선율
나를 도닥 여준 가야금 선율
  • 하성자
  • 승인 2021.06.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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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두 번째 가야금 4중주곡, 이고운 작곡 `풍경`이 흐른다. 문득 낯익은 들길이 나타났다. 달리는 기차에서 보듯 나는 들길을 휙휙 지나쳐가고 있었다. 무대에 집중하자, 정신을 차리려는데, 땅내 맡아 짙어진 모 사이로 찰랑거리는 논물, 동동 떠다니는 개구리밥이 보이고, 습기 품은 바람이 느껴졌다. 절대 멱 감지 말라 하시던 웅덩이 한가운데서 물이 뱅뱅 도는데 박수 소리가 커지면서 풍경이 사라졌다. 가야금 연주를 듣는데 왜 생각지도 않던 고향이 떠오른 거지?

25현 가야금 3중주를 위한 `회전목마` 위촉초연이 시작됐다. 제대로 감상하자, 연주자들 모습에 집중하노라니 눈은 무대를 담는데 생각엔 어린 날 정경이 연속극처럼 재현되고 있었다,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초록 빛, 이끼그늘 아래로 모였다가 흩어지더니 초르초르 다시 무리 짓는 올챙이들이 바쁘다. 넓적 돌 너덧 개를 개울에 가로질러 놓고, 작은 돌과 자갈로 틈새를 대충 채우면 얼기설기한 봇둑이 된다. 냇물은 적당히 흐르면서 아이 무릎이 잠길락 말락 더 이상 깊이를 욕심내지 않는다.

넓적 돌은 빨래판이다가 징검다리이다가 한가로운 의자이다가 했다. 물놀이는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달달 턱 떨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부딪는 치아 소리가 달각거리게 하는데, 달궈진 넓적 돌에 얼굴을 댔다가 엉덩이를 댔다가, 그 돌이 젖어 차가워지면 다른 돌로 옮겨서 아이는 햇볕에 몸을 맡긴다. 손바닥으로 찰박, 광순이 언니 물 망치 공격이다. "찻, 찹다, 언니야!" 바로 역공이다.

아이는 빨랫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바지랑대를 밀어 세우고 마루 끝에 앉아 다리를 얄랑거리며 책을 펼쳐 들고 엄마 칭찬을 기다린다. 한 걸음도 생산적인 걸음이던 엄마, 들일을 마치고 그냥 오실 리 없다. 물동이를 이고 들어서신다. "엄마!" 뛰어가 거들려 드는데 "마, 됐다. 물 쏟겠다" 하시며 한 방울도 쏟지 않고 옮겨 붓는 실력, 항아리 속에서 물소리가 메아리치는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연주회가 막을 내렸다. 여운, 너무나 선연한 고향 길, 어린 날 그 아이!

한동안 예술 공연이 뜸하긴 했다. 가야금 선율 따라 그려진 정경, 지금까지도 나를 도닥이고 있는 감동이 긴여운을 끈다. 예술이 만든 통로를 따라 "지금 난 평온한 바람 속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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