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1:32 (금)
나뭇잎을 흔들려면 그 밑동을 쳐라
나뭇잎을 흔들려면 그 밑동을 쳐라
  • 허성원
  • 승인 2021.06.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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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원 변리사 여시아해(如是我解)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지게를 져본 적이 있는가. 어릴 때 농사일을 돕느라 지게로 짐을 져서 날라 본 적이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서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데, 그러면 짐이 머리를 넘어 앞으로 쏟아질 판이라 혼자 일어설 수조차 없다. 동료의 입장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도우면 좋겠는가.

그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조력자가 뒤에서 지게를 사정없이 앞으로 밀어주면 된다. 뒤에서 미는 힘이 느껴지면 지게꾼은 반사적으로 뒤로 뻗대게 되고,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새 일어서게 된다. 뒤에서 미는 힘과 앞에서 뻗대는 힘의 합력이 벌인 물리학적 효과의 마술이다. 이런 실전 노하우들을 `일머리`라 부른다.

"주목왕(周穆王)의 마부인 조보(造父)가 밭일을 하고 있을 때, 한 부자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말이 무엇에 놀랐는지 움직이질 않는다. 아들은 말을 당기고 아비는 수레를 밀면서 조보에게 수레 미는 도움을 청하였다. 조보는 도구를 거두고 수레에 올라타서 그 아들도 오르게 한 후, 고삐를 당기고 회초리를 들자, 미처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말은 달려 나갔다. 조보가 말을 다룰 능력이 없었다면, 비록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도와 수레를 밀었다 하더라도 말을 움직이게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힘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은 말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서이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나오는 `검비지책`( 고삐를 당기고 회초리를 들다)이라는 고사이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들어 말한다. "나라는 군주의 수레이고, 세(勢)는 군주의 말이니, 그것을 다루는 술(術)이 없으면 아무리 몸으로 애를 쓰더라도 나라의 어지러움을 면할 수 없다. 다루는 술(術)이 있어야 몸을 편히 하면서도 제왕의 공덕을 이룰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차를 모는 것과 같다. 군주가 군사력이나 왕권과 같은 강력한 세(勢)를 구축하였어도, 그 세(勢)를 적절히 다루는 술(術)이 부족하다면, 나라는 방황과 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한비자의 가르침이다.

그 술(術)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일머리인 셈이다. 한비자는 그 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충하고 있다.

"나무를 흔들려고 하는 사람이 그 잎을 일일이 잡아당겨서야 힘만 들 뿐 두루 미칠 수가 없다. 그 밑동을 좌우에서 치면 잎이 모두 흔들리게 된다." "그물을 잘 치는 자는 그 벼리만 잡아끌면 된다. 수많은 그물눈을 일일이 당겨서 잡는다면 힘들고 어렵게 된다. 벼리를 잡아끌면 고기는 이미 자루 속에 들어 있는 법이다." "불을 끄려고 하면서, 관리에게 항아리를 들고 불로 달려가게 하면 한 사람의 몫을 이용한 것이지만, 채찍을 들고 지휘하여 사람들을 재촉하게 하면 만 명을 통제할 수 있다."

한비자가 말하는 `술`(術)의 요체는 `부본엽요`( 밑동을 쳐서 잎을 흔든다)로 요약된다. 나무의 밑동이나 그물의 벼리와 같은 존재인 중간 관리자를 통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권한위임`(empowerment)을 의미한다. 회사나 조직을 이끄는 현대의 리더들도 경영권이나 리더십이라는 세(勢)를 다루는 데 있어 `권한위임`의 술(術)을 이미 널리 활용하고 있다. 권한위임은 중간관리자에게 임무를 할당하여 권한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조직 효율성을 제고하는 보편적인 경영 기법이다.

그런데 자율적인 권한위임 시스템을 잘 구축해두고서도, 리더가 부하들의 일을 주섬주섬 떠맡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을 `어깨 위의 원숭이`(Monkey on Shoulder)라 한다. 부하가 조언을 구했을 때 `내게 맡겨주게` 혹은 `내가 생각해 보겠네`라고 말했다면, 그 순간 부하의 원숭이가 리더의 어깨로 옮겨 탄 것이다. 자칫 방심하면 어깨 위의 원숭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정신없이 소란을 떨어, 리더의 업무와 시간 관리를 성가시게 방해한다.

`어깨 위 원숭이`는 부하에게 업무주도권을 확실히 이양하고 그것을 어김없이 지키게 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혹 넘겨받은 원숭이가 있으면 즉시 처리하여 되돌려 보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애초부터 아예 넘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부득이하게 넘겨받았다면 그 수를 철저히 제한하고, 언제라도 되돌려 줄 수 있도록 약속해두는 것이 좋다. `술`(術)에 능한 리더는 원숭이 관리에도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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