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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에 있는 불교 남방 전래 흔적들
흥국사에 있는 불교 남방 전래 흔적들
  • 도명 스님
  • 승인 2021.05.24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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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 산 사 정 담(山寺情談)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부산 강서구의 보배산 자락 동북쪽 허왕후길에 자리한 흥국사는 가야불교의 중요한 유물들이 여러 개 남아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의 사찰이다.

뒷산은 보배 또는 보개(寶蓋)산으로 불리는데 보배란 허왕후를 뜻하며 보개란 보주 등으로 장식된 햇빛을 가리는 일산으로 커다란 비단양산을 말한다. 그 이전은 명월산(明月山)이라 했는데 수로왕이 아리따운 신부 허왕후를 지칭하여 산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또 베개의 방언이 보개인데 산을 보면 평평한 일자주봉으로 베개처럼 생기기도 했고 수로왕과 허왕후가 그 산 아래서 함께 베개를 베고 잤기에 이름이 지어졌나 싶기도 하다.

<김해명월사사적비>에서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이 산 아래에서 처음 만나 결혼하여 신혼 이틀 밤을 보내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훗날 수로왕은 산 동쪽 골짜기에 허왕후를 위한 진국사(鎭國寺)와 산 서쪽 벼랑에 세자를 위한 신국사(新國寺), 그리고 산 중앙에 자신을 위한 흥국사(興國寺)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처럼 가야 초기의 사찰들의 이름을 보면 부암, 모암, 자암 등과 같이 가족을 위해 절을 지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사찰명에 `국(國)`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진국사, 신국사, 흥국사뿐 아니라 서림사, 동림사, 흥부암처럼 나라의 발전을 위해 지었다는 호국불교의 공통점이 있다. 이것으로 보면 수로왕이 얼마나 마음 깊이 가족과 나라를 위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허왕후길을 따라가면 계곡 끝에 흥국사가 있고 도량에 들어서면 잘 지어진 대웅전이 있으며 옆 극락전에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사왕석(蛇王石)으로 불리는 돌 부조물을 만날 수 있다. 가로 74㎝, 세로 52㎝, 15㎝의 사왕석은 뱀 한 마리가 불상을 휘감고 보호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유일한 형태의 불상이다. `사왕`은 뱀의 왕 `무칠린다`로 붓다가 깨달음은 얻고 선정에 든 후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궂을 때 무칠린다가 붓다의 몸을 감고 보호했다고 하며 명월사의 사왕석은 그 일화를 표현한 석물이라 한다.

향토 사학자였던 고(故) 이종기 씨가 인도에 갔을 때 만났던 동남아 불교문화의 권위자인 로케쉬 찬드라 박사도 사왕석의 사진을 보고는 즉석에서 바로 고대 인도와 한반도의 직접적인 교류의 증거라고 말하였다. 흥국사 앞마당에는 조선 숙종대인 1708년 이 절을 중창할 때 세운 <김해명월사사적비>가 있는데, 김수로왕이 처음 절을 지었을 때는 흥국사였으나 이후에 명월사로 바뀌었다는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사적비에는 창건 역사뿐 아니라 중창할 때 담 밑에서 주운 기왓장에는 서기 144년이라는 명문이 나왔다고 하고 있으며 그것은 장유화상이 서역으로부터 불법을 전해 온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이 기왓장이 소실되어 없으나 300여 년 전인 당시에는 분명히 있었다고 하였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세월이 지나 분실했거나 소멸되었다 해서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라고 그 누구도 성급히 단정할 수는 없다.

마당에서 대웅전을 뒤돌아가면 아담한 규모의 미륵전이 나오는데 미륵전 안에는 주불인 미륵부처님은 없고 길쭉하고 미끈한 돌 두 개가 불단 위에 있으며 언뜻 보면 형제인 것 같기도 하고 부부인 것 같기도 한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돌들은 그냥 돌이 아니고 인도에서 남성성을 상징하는 `링가`의 일종인데 우리나라 토속의 남근 신앙과 비슷한 인도의 토속 신앙이 가야에 전파된 흔적으로 보고 있다.

모은암 나한전의 링가와 지금은 다른 석물로 대체한 밀양 부은사 요니에 박혀있었던 원래의 링가들은 가야불교 연기사찰에서 보이는 가야의 문화 중 하나이다.

흥국사는 조선 후기에 폐사되었다가 1942년 우담 스님이 다시 중창하였다 한다.

지금도 가락 종친회에서는 명월산 자락에서 수로왕과 허왕후가 합혼 하였던 것을 기념하여 매년 빠트리지 않고 종친 수십 명이 흥국사에 와서 참례하고 간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알고 보면 너 조상, 내 조상 따로 있지 않는 것이 외가 쪽으로 위로 몇 대만 올라가면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이천 이씨를 만나게 되며 외가를 통해 피가 섞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김수로왕과 허왕후도 나의 조상님 중 한 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수로왕과 허왕후를 신화화하고 가공의 인물로 부정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가 `나는 근본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나의 인식과 관계없이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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