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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만에 귀환한 ‘사명당 유정 교첩’엔 호국의 얼이 서려있죠
400년만에 귀환한 ‘사명당 유정 교첩’엔 호국의 얼이 서려있죠
  • 조성태ㆍ이정민 기자
  • 승인 2021.05.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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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문화재ㆍ보물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이자 경남도기념물 제17호 표충사.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이자 경남도기념물 제17호 표충사.

불교ㆍ유교 한자리 공존하는 사찰

절 전체 경남기념물 제17호 지정

높이 7.7m 3층 석탑은 보물 467호

석탑 해체 중 출토 유물 일괄 발견돼

‘청동 은입사 향완’ 현존 최고 향완

사명대사 유물 300여점 잘 간직

5월 봄날의 끝자락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 속 역사ㆍ문화를 간직한 밀양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의 고귀함을 느껴보자.

예로부터 사찰이 있는 자리는 명당이라고 불리웠다. 그 말이 옳다고 인정하듯 표충사는 사계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재약산의 풍광과 함께 불교와 유교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특색 있는 사찰이다.

사명대사의 충의가 서려 있어 역사와 불교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표충사는 대나무가 무성해 죽림사로 불리었으며, 흥덕왕 4년(829)에 나병에 걸린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 약수를 찾아다니다가 사찰의 약수를 마시고 완쾌하자 가람을 중창케 하고 절 이름을 ‘영정사’로 바꿨다는 후일담이 있다.

죽림사ㆍ영정사로 이름이 바뀌다가 조선 후기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가 나라의 지원을 받아 무안면에 있는 표충서원을 옮기고 중창 후 임진왜란 의승대장인 사명ㆍ서산ㆍ기허 등 3대 선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을 사찰 내에 둠으로써 사명을 표충사라 부르게 됐다.

큰 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은 절이자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표충사는 현재 경남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표충사는 사명대사에 얽힌 스토리텔링 외에도 국보, 경남도 기념물에 지정된 문화재ㆍ보물들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경상도 승군을 이끄는 총섭으로 임명한 문서 ‘사명당 유정 교첩’.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경상도 승군을 이끄는 총섭으로 임명한 문서 ‘사명당 유정 교첩’.

△사명대사 호국정신 알리는 ‘유정 교첩’

지난해 11월 28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634호 이자 조선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를 경상도 승군을 이끄는 총섭으로 임명한 문서 ‘사명당 유정 교첩’이 400여 년 만에 표충사로 귀환했다.

‘사명당 유정 교첩’은 그동안 부산시에 사는 김상자 씨가 소장하고 있었다. 고미술을 좋아한 선친이 간직하던 것을 물려받아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고 뜻깊게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한 것이다. 기증에 앞서 ‘사명당 유정 교첩’은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감정을 받은 바 있으며 2000만 원에 해당하는 감정가를 받았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269호 사명대사 관련 교지 중 1점.
경남 유형문화재 제269호 사명대사 관련 교지 중 1점.

임명문서 가운데 사명당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국내 유일 문서 사명당 유정 교첩은 조선시대 대선(大選, 승과에 합격한 스님이 처음 받는 법계)인 사명당 송운(사명)대사를 경상도 총섭에 임명한다는 것으로, 선조 26년(1593) 8월에 비변사가 왕명을 받아 발급했다. 이 문서는 당시 긴박한 상황을 알려주는 객관적인 자료로 중요도가 높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74권, 선조 29년 4월 17일 계축 6번째 기사에는 비변사에서 선조에게 경상도 좌, 우도에 각각 총섭을 선출해 일을 분장시킬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다.

주지 진각 스님은 “교첩이 돌아온 것을 보니 사명 스님이 마치 돌아오신 느낌이 든다. 이번 기증식을 계기로 사명 스님의 애민 정신과 호국의 얼이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높이 7.7m로 안정감 보다 상승감을 강조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보물 467호 표충사 삼층석탑.
높이 7.7m로 안정감 보다 상승감을 강조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보물 467호 표충사 삼층석탑.

△표충사 삼층석탑ㆍ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표충사 대홍원전 앞 높이 7.7m의 삼층 석탑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단 모서리와 옆면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1층 몸돌을 상당히 높게 만들어 안정감보다 상승감을 강조한 3층 석탑은 표충사가 자랑하는 보물 467호이다.

석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겨놓았다. 또, 꼭대기에는 쇠막대기가 세워져 있어 머리 장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통일 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와 세부 조각 수법이 양호하다.

1995년 석탑 해체보수 도중 기단에서 발견돼 보물 199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1995년 석탑 해체보수 도중 기단에서 발견돼 보물 199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또, 지난 1995년 석탑 해체보수 작업 도중 기단 적심부에서 발견된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도 보물 제1994호로 지정돼 있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금동불상 20구와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탑 수리 내역을 알려주는 조선 초기 ‘개수탑기비’가 보물 제1994호에 포함돼 있다.

불상 중에는 머리와 대좌 등이 파손된 것들도 있었지만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많은 불상이 함께 발견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석탑 안 사리장엄구 외에 불상을 봉납한 사례는 통일신라 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다양한 형식과 양식, 시대별 층위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라는 게 문화재청 설명이다. 통일신라 9세기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실증하는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완이자 국보 제75호인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완이자 국보 제75호인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은 고려 시대 유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완이다. 높이 27.5㎝, 밑지름 26.1㎝의 크기의 향완의 형태는 주둥이 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바깥으로 벌어진 나팔 모양의 받침을 갖춘 모습이,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이나 너비의 비율이 거의 1:1을 이룸으로써 균형 잡힌 비례 감각을 보여주며, 넓은 전 윗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6개의 원 안에 법자는 은입사 기술을 사용해 매우 정교하며 세련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몸체에 굵고 가는 여러 선들로 능숙하게 표현돼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용 그림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중요민속자료 제29호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사 석등,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표충사비,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돼 있다.

표충사 주지 진각 스님은 “밀양 출신 사명대사의 충훈이 깃든 밀양의 자랑 천년고찰 표충사가 지역과 함께 일신해 밀양을 대표하는 사찰을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사찰로 신자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수행 정진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앞으로 향사 등을 통해 사명대사의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강구해 신도와 시민, 표충사를 찾는 내방객들에게 밀양과 사명대사의 충훈을 널리 알릴 예정이다”고 전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268호 일부 표충사당 삼대성사 중 서산대사 진영사진.
경남 유형문화재 제268호 일부 표충사당 삼대성사 중 서산대사 진영사진.

한편, 표충사는 매년 봄과 가을 2회에 걸쳐 불교와 유교 의식으로 서산, 사명, 기허 삼대 성사의 업적을 기리는 향사가 개최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열린 제555회 호국대성 사명대사 춘계 향사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조용하게 봉행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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