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34 (토)
부은사<父恩寺>- 아버지 그리워하는 사부곡<思父曲>
부은사<父恩寺>- 아버지 그리워하는 사부곡<思父曲>
  • 도명 스님
  • 승인 2021.05.03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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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 정 담 (山寺情談)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여여정사 주지ㆍ가야불교연구소장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천태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부은사는 2000년 역사의 가락 고찰로 가야불교의 향운이 그윽하게 서려 있는 도량이다.

도량에 들어서서 앞을 보면 저 멀리 흘러들어오는 낙동강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데 명당의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곳에 처음 절을 지은이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한다.

부은사의 창건 설화는 수로왕의 뒤를 이은 가락국 2대 거등왕이 부왕인 아버지 수로왕을 위해 지었다고 하는 설화와 수로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두 가지의 설화가 있다. `가락국기`에 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설마 사람이 알에서 났겠는가…

수로왕이 어떤 사정이 있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스스로를 신격화하였지만 어찌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었겠는가? `숭선전지`(崇善殿誌)에는 수로왕이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지은 사찰이 부은사라고 되어 있는데 형편상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수로왕의 애끓는 사부곡(思父曲)으로 지어진 도량이라는 것이다.

옛 부암, 모암, 자암으로 보면 중앙의 부암은 수로왕의 아버지와 인연하여 지어졌고 좌측 방향의 모암은 수로왕의 어머니와 인연하여 지어졌으며 우측 방향의 자암은 수로왕 자신 또는 그의 아들인 거등왕을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 부은사와 비슷한 사찰 연기 스토리가 허왕후가 배를 댔다는 진해 용원의 주포마을에 있는데, 뒷산인 명월산 가운데에는 수로왕이 자신을 위해 지었다는 흥국사와 산 좌측인 동쪽에는 허왕후를 위해 지었다는 진국사, 산 우측인 서쪽에는 세자를 위해 지었다는 신국사가 있다. 법당에 들어가면 영단에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어 가야불교와 인연있는 사찰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

부은사에서 몇 년 전 시굴 조사를 통하여 가야시대의 그릇이 발굴되어 그 터는 가야시대에도 실존하였음을 증명해 주기도 하였고 영산전 뒤 바위에 새겨져 있는 통천도량(通天道場)이란 글자는 김해 은하사의 신어통천(神魚洞天)과 무척산 정상에 있었던 통천사(通天寺)와 더불어 가야불교의 중요한 연결 코드 중 하나이다. 통천(通天)과 통천(洞天)은 하늘과 통한다는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용왕당 옆에 있는 큼직한 돌은 영판 맷돌처럼 생겼으나 그것은 맷돌이 아닌 <요니>라는 종교성을 지닌 석물로 인도의 힌두이즘과 관계가 있다. 요니와 맷돌은 외형상 비슷해 보이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 맷돌은 중앙에 구멍이 없으나 요니는 중앙에 <링가>라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길쭉한 돌을 꽂는 커다란 구멍이 있고 맷돌의 윗돌 같은 건 애당초 없다는 점이다.

요니와 링가는 가야불교 연기사찰에서 보이며 장유사 마당에도 변형된 듯한 요니와 링가가 있고 모은암 나한전에도 두 개의 링가가 있으며 부산 흥국사 미륵전에도 두 개의 잘생긴 링가 석물이 있다. 대웅전 옆 계곡에는 옛 법당 주춧돌 아홉 개 중 세 개가 있는데 그 지름이 1m 50cm 이상으로 크며 부은사의 옛 사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고석굴`이란 이정표를 따라 법당 뒤로 얼마간 올라가면 큼직한 마곡석굴이 있는데 <마고> 또는 <마가>란 단어는 고대 한민족의 뿌리인 선도(仙道)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단어라 부은사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이 석굴에서 수행하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와 번다하여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며 또 밀양 무안 출신의 사명대사도 마고 석굴에서 수행하였다고 전해온다. 절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돌무더기는 태봉이라 불리며 가락국왕의 태무덤이라 하는데 그 연유로 아랫마을 이름이 `안태(安胎) 마을`이라 불린다고 한다. 가락국왕 중 누구의 태무덤 인지 알 수 없으나 혹시 수로왕의 것이라면 이것으로 미루어 수로왕의 본향은 밀양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밀양의 옛 이름이 용을 뜻하는 `미르`와 넓은 땅을 뜻하는 `벌`을 합쳐서 `미리벌`(龍平)인데 수로왕이 잠룡(潛龍)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그렇게 불린 것은 아닐까 하고 잠시 봄날의 망상을 부려 본다.

부은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몇 번의 중창을 거쳐 근래에 회주이신 태우 큰스님의 원력으로 가람이 일신하였고 주지 지원스님의 말에 의하면 부은사는 가야불교 연기사찰 가운데 가장 많은 흔적이 남아있는 도량이라 하는데, 실제 가서 보면 `과연 명실상부(名實相符)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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