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05 (금)
약속
약속
  • 하태화
  • 승인 2021.04.27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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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관광을 가는 사람도, 가는 비행기도 거의 없다. 김해국제공항은 국제선이 겨우 주 1회 운항하고, 인천국제공항은 평년보다 여객의 90%가 감소 되었다고 하니 코로나의 충격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북적이던 과거의 공항 모습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비행기 탑승에서 결항보다 더 짜증스러운 것이 바로 지연출발이다. 국제선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지연출발의 원인은 항공기 기체 이상, 기상 문제, 면세점 쇼핑 승객, 공항 관제상 출발 시각 조정의 문제도 있겠지만, `연결편`도 큰 원인 중의 하나다. 항공기는 고가인지라 빨리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정비 시간을 제외하고 쉬지 않고 운항시켜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승객을 내리고, 기내 청소를 마치자마자 다시 승객을 태워 출발하는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그런데 여유 시간 없이 촘촘하게 비행 스케줄을 짜다 보면, 어느 한 곳에서 기상이나 공항 문제로 인해 지연출발이 있게 되면 그 비행기가 운항한 이후의 모든 스케줄이 차례로 밀려 버리게 되는데 이것이 `연결편 문제`다. 이날 이 비행기를 이용할 승객은 `연결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연결편 문제`는 선행 비행기의 출발지 공항 이륙 시각을 알면 이곳의 출발 시각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어 그 시간 동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출발 직전 기체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정비 시간을 예상하여 1시간의 탑승 지연을 예고했는데, 막상 그 시간이 다가오자 정비가 지연되어 재차 한 시간 더 연장, 그것도 모자라 또 한 시간 재 연장을 한다면 결과적으로 승객을 공항 탑승구에 세 시간을 묶어 둔 셈이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예고했다면 승객의 짜증을 한 번으로 막을 수도 있었고 긴 자유시간도 줄 수 있었다. 세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탑승했는데, 기내에서 `기체 이상으로 출발이 늦어 죄송하다`라는 한마디의 사과 멘트에 승객의 기분은 말끔하게 정리되었을까.

계획된 시각에 출발하면 설레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지만,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함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은 비행시간 내내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목적지 도착 후에 변경되어야 할 일정이나 계획한 일들의 실행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항공사는 승객에게 물리적으로는 세 시간을 낭비하도록 만들었지만, 실상은 상대방의 정신까지 침범한 큰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 정해진 출발 시각, 그것은 공공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기초로 승객은 도착 후의 일정을 세운다. 이 때문에 비행 스케줄이 정해졌다면 항공기가 정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한다. 약속된 출발 시각에 방해되는 요소가 없도록 조치해 두는 것이 항공사의 책임이자 승객에 대한 도리이다.

공항과 항공사 평가에 `정시출발률`이라는 것이 있다. 계획된 출발 시각으로부터 15분 이내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조사하는데, 좋은 항공사와 좋은 공항, 이른바 일류 항공사와 일류 공항은 정시출발률이 높다. 약속된 시간을 맞추려는 노력의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 노력이라고 해서 마냥 의지로만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시성은 공항과 항공사의 신뢰와 직결되기에 목표를 세우고 과학적인 기법을 통해 관리해 나가야만 가능하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미덕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다. 비즈니스는 물론이거니와 사람과 사람끼리 가볍게 구두로 한 약속이라 하더라도 이를 경솔히 여겨서는 안 된다. 약속의 일방적인 취소 또한 동일하다. 관계에서 신뢰는 모든 것의 근본이기에 신뢰가 깨지면 그 관계도 자연 깨진다. 약속을 잘 지키면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계가 발전한다. 개인끼리, 단체끼리의 작은 신뢰들이 모여서 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을 만들고 사회는 자연 품격이 높아진다. 사회의 격이 높아지면 국격도 높아지게 되며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 이것이 또 다른 연성(軟性) 국력이다. `약속을 하면 지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한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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