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7:05 (토)
정주역해의 반란 고사역
정주역해의 반란 고사역
  • 이광수
  • 승인 2021.04.18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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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의리역과 상수역의 종지(宗旨)인 정주(程朱)의 해석을 완전히 뒤집는 학설이 중국과 대만에서 비등하고 있다. 최근 고전번역교육원 김상현 박사가 지은 <고사주역>등 네 권의 역학서를 읽고 지금까지 공부해온 정주역해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물론 새로운 주역해석법인 <고사주역>에 대해 기존의 주역학자들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만큼 반발과 비난이 거세었다고 한다. 필자는 <고사역>의 학제적인 주역해석법은 부회 지향적인 정주역해를 혁파한 혁명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역학자들은 괘사와 효사의 해석은 <역전>으로 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해 왔다. 왕필은 의리역으로 역경(괘사와 효사)과 역전(십익)을 통합해 해석했다. 그리고 의리역은 정이의 <역전>을, 상수역은 주자의 <주역본의>를 종지(宗旨)로 삼아 의리역과 상수역은 창조적으로 결합되었다. 이처럼 정주역(程朱易)은 주역해석의 정석(定石)으로 굳게 자리매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청 말에 발흥한 훈고학의 영향을 받은 한유들은 질박하고 독실한 학풍을 중시한 박학(樸學)으로 주역을 해석했다. 고염무, 황종희는 주역해석에 훈고방식인 문자의 주석과 고증을 중시함으로써 종래의 송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배척했다. 이어 모기령, 호위 등과 금문학파(고문해석파)인 요제항, 최술, 료평 등은 전통적인 주역해석법에 반기를 들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고힐강, 여영량, 곽말약 등의 고사변파(故事辨派)가 출현하자 고증역의 열기는 더욱 고양되었다. 심지어 고사변파인 전복은 `십익은 공자의 작품이 아님을 논함` 이라는 논문까지 발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고사변파 고증역학자들은 `경(經)의 해석은 경으로` `전(傳)의 해석은 전으로`라는 이경해경(以經解經)과 이전해전(以傳解傳)을 주창했다. 이는 경과 전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역해석법이다.

이른바 주역해석은 춘추좌씨전의 고점서례19장과 국어의 고점서례3장에 기술된 역사적 사실(사건)에 근거해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학제적인 주역해석법이라는 주장이다. 고증역의 대표주자인 고형은 주백곤의 저작 <주역철학사>에서 갑골문의 정(貞)자 해석을 `점에 묻는다.`고 풀이해, 건괘의 괘사 `원형이정`의 정(貞)을 바름(正)이 아닌 점(占)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정주(程朱)역해에 대한 반기로 기존 역학계의 큰 반발을 샀다. 고사변파의 고증역은 더욱 발전했는데, 이는 마왕퇴출토 유물을 정리한 <마왕퇴백서>에 의해 이론적 근거가 확립됨으로써 고사역의 당위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괘ㆍ효사는 고사(故事)를 기술한 것으로, 주역 64괘와 각 여섯 효는 한 괘에 한 가지 고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았다. 한 괘의 괘사와 여섯 효사는 한 고사의 내용을 진행순서대로 서술하고 있어서 고사는 모두 주나라 275년의 실화를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한 괘의 여섯 효에서 초효는 한 고사의 시작이고 상효는 그 고사의 끝맺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괘는 중심인물, 주제, 소재, 사건의 진행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괘사와 효사는 은말 주왕과 주초 문왕, 무왕 시절에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고사학파는 지금까지 정주에 얽매인 경학의 해석을 배척하고 삼천여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새로운 관점으로 주역을 해석했다.

고사학파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른 근거로는 <십익> `계사전`에서 <춘추좌전>의 `춘추관점서례`를 인용했으며, 다산 정약용은 <춘추관점보주>에서 선유들이 <춘추좌전>과 <국어>의 고점서례연구를 간과하는 바람에 전통적 역학계보가 단절됐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서양역학자인 후앙, 빌렐름, 불루펄드 등은 모두 은말 주초의 주왕과 문ㆍ무왕의 고사를 인용해 주역을 해석하고 있다. 상수역의 번쇄한 해석법과 의리역의 현학적인 해석법은 주역을 난해한 경학으로 고착시켰다. 이처럼 범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주역해의 철옹성을 혁파한 <고사역>은 주역철학사의 새 지평을 개척한 역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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