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0:58 (토)
아날로그 인간
아날로그 인간
  • 하태화
  • 승인 2021.03.1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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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ㆍ사회복지사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거나 이용하는 사람을 `디지털`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아날로그`라며 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과연 디지털만이 좋은 것일까? 디지털 기기와 아날로그 기기의 대표적인 것이 시계다. 디지털시계는 숫자로 표시된다. 1초 다음은 분명 2초다. 물론 기록 측정 경기에서는 초 아래에 숫자가 더 있는 정밀한 시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디지털에서는 1 다음은 분명 2다. 여기에 비해 아날로그 시계는 바늘이 1과 2의 구분 없이 연속적으로 움직인다. 가정용 온도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온도계는 명확하게 숫자로 나타내지만, 아날로그식인 붉은색 온도계는 숫자 간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컴퓨터로 그린 무지개는 멀리서 보면 자연스러운 색깔의 변화로 보일지는 몰라도 확대하여 보면 작은 사각형 안에 각기 다른 색의 경계가 존재한다. 보통의 컴퓨터는 0과 1의 이분법적 디지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기에 정밀하고 빠르다는 장점은 분명 가지고 있지만, 결코 만능은 아니다. 아날로그 자료를 처리하는 곳, 즉 항공기 날개의 풍압에 의한 진동 분석, 미분방정식을 이용한 각종 장치의 제어 등에는 아날로그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사람은 생각은 어떨까. 사람은 아날로그다. 사람이 디지털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선 아니면 악, 흑 아니면 백을 구분하는 터미네이터일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가졌기에 인공지능처럼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없다. 사람의 감정은 디지털처럼 0과 1 즉, `좋다, 나쁘다`로 확실한 구분을 할 수 없고, 또 `맞다, 틀리다`를 오류 없이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이 상대하는 모든 사물,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오랜만에 인간미 넘치는 뉴스 하나가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1학년 때 이성 교제 40명 징계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가 그렇다. 학칙을 위반했다고 자치위원회인 `명예위원회`에 자진하여 신고한 40여 명의 생도에 대해 벌점과 근신 처분을 내렸다는 것인데, 위반의 내용이 정말 인간적이며 상큼하다고 생각된다. 1학년과 상급생도 또는 1학년 동급생과의 이성 교제를 금지한다는 학칙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1학년에게 교내 연애를 금지하는 이유가 상급생도가 위계질서를 이용해서 억지로 사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조금은 억지스럽지 않나 싶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좋아하지 말라고 해서 좋아하지 않게 되고, 좋아하라고 해서 좋아하게 되는 것이던가. 사람이 어디 인공지능 알파고이던가. 규칙을 만든이도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슨 실험이라도 한 것일까.

이퀄스(equals)라는 SF 영화가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미래 세계, 감정은 병이기에 감정이 생기면 감정억제 치료를 받아야 하고, 만일 이 병을 숨기고 있다가 발각되면 격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병을 감시하는 요원도 감정을 갖게 되고 `감정 증후군`에 걸린 남녀가 사랑하도록 눈감아 준다는, 이 사회의 각종 사회제도, 법률, 도덕, 윤리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회 현상을 고발하는 영화다. 사람의 감정은 통제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움츠려 있다가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다시 나온다. 겨우내 땅속에 있는 식물이 봄이 되면 흙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관심이 가고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금지`를 입력했다고 그대로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아날로그인지라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기계처럼 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인간이라고 한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정확한 것보다는 가끔은 실수도 하고 갈등을 겪고 모호한 판단을 하는 빈틈이 있어야 한다. 환경에 맞추어 유연한 융통성 있는 사고를 해야 한다. 불완전한 사람이 정한 규칙으로 인간의 감정을 막아서도 안 된다.

지금이 디지털 세상이긴 하지만 인간은 아날로그 감성을 가져야 한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내일을 모르기에 오늘도 살아가는 맛이 있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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