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2:10 (토)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금에 사다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금에 사다
  • 허성원
  • 승인 2021.03.0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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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허성원

"옛날 한 왕이 천금을 들여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되도록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시종 하나가 천리마를 구해오겠다고 하여 보냈더니, 석 달 만에 말을 찾았으나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이에 그 머리를 5백 금에 사서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왕은 크게 노하여 꾸짖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말인데, 어찌 죽은 말을 사고 게다가 5백 금이나 썼느냐?` 시종이 대답했습니다. `죽은 말도 5백 금으로 샀다면, 하물며 살아있는 말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천하 사람들이 왕께서는 반드시 말을 능히 사실 분이라 여길 것이니, 이제 말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해가 지나지 않아 천리마를 세 필이나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소왕(燕昭王)(?~ BC 279년)은 제나라의 침공으로 피폐해진 나라에 즉위하였다. 나라를 조속히 재건하기 위해 널리 인재를 초빙하고자 신하 곽외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위 고사를 들면서 이렇게 간하였다. "지금 왕께서 참으로 선비들이 찾아오게 하고 싶으시면, 저 곽외부터 섬기기 시작하십시오. 저 같은 사람이 섬김을 받는다면, 하물며 저보다 어진 사람들이 어찌 천 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이에 연소왕은 곽외를 위해 궁을 짓고 그를 스승으로 삼았더니, 악의가 위나라에서 추연이 제나라에서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오는 등 선비들이 앞 다투어 몰려들었다.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위 이야기로부터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금에 사다`라는 뜻의 `천금매골(千金買骨)` 혹은 `매사마골(買死馬骨)`이라는 성어와 `곽외를 섬기는 것부터 시작하다`라는 뜻의 `선종외시`라는 성어가 유래하였다. 죽은 천리마의 뼈를 비싼 값에 사니 천하의 천리마들이 모여들고, 지금 데리고 있는 신하를 극진히 섬기니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든다는 가르침이다.

기업의 핵심 가치 실현도 인재에 달려있다. 그래서 기업들의 인재 유치 및 양성을 위한 노력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최근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간에서도 과열된 인재 유치 경쟁이 벌어져 외국에까지 나가 송사를 벌이기도 한다. 인재의 유치 노력이나 유출 예방은 `선종외시`의 가르침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인재와 함께 기업 성공의 천리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기술`이다. 핵심역량인 기술은 주로 발명이나 특허의 모습을 갖는다. 약 30년쯤 전에만 해도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기술경쟁력은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뒤처졌다. 그런 우리 기업들이 지금과 같이 세계에서 기술 선도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직무발명제도를 통한 발명 장려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연구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발명 신고 건수를 할당하는 등 특허 출원을 양적으로 밀어붙이고 적잖은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지금 보면 당시 출원된 발명의 수준은 앞선 기술의 모방이나 변형에 불과하였으니, 죽은 천리마의 뼈를 비싸게 사들였던 셈이다. 그런 강력한 정책의 결과 발명이 생활화되고 연구원들의 기술 창조력이 높아져서, 살아 숨 쉬며 거침없이 달리는 수많은 천리마와 같은 고급 기술을 보유하게 되고, 지금 세계 4위의 특허 다출원 국가로서 당당히 기술 강국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천금매골의 입증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의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자, 그 기술들을 개발한 연구원들에 대한 보상에도 관심이 커져, 그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다툼이 생기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수십 건의 발명 보상금 소송이 계류 중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각자 나름의 입장과 이유가 있겠지만, 이로 인해 천리마 같은 기술을 창출하는 천리마 같은 연구원들의 열정과 창의력이 식지 않을까 우려된다. 청색LED를 발명하고 노벨상까지 수상한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 박사가 회사와의 발명 보상금 분쟁 등을 겪고 결국 국적까지 버린 사례는 좋은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천금매골, 선종외시의 지혜를 기억하여야 한다.

지금 곁에서 활발히 동작하는 천리마가 혹 천대를 받는다고 여겨지면, 더 새롭고 더 강한 천리마의 탄생이나 유입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논어 자로편에서,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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