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0:23 (금)
노사(勞使)라는 것
노사(勞使)라는 것
  • 하태화
  • 승인 2021.02.02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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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하태화 수필가 / 사회복지사

지난 며칠 사이 택배 기사와 관련된 뉴스가 거의 매일 등장했다. `택배노조 총파업 철회, 노사 잠정합의안 가결`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파업을 결의하고 다시 철회하는 등 생존권이 걸린 다소 무거운 뉴스이긴 하지만 기사 제목으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법에도 맞고 흔히 보는 단어에 간결한 제목이다.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곰곰이 따지고 보면 별로 유쾌하지 않다. 택배노조에서 `노조(勞組)`는 노동조합(勞動組合)의 줄임말이다. 노조가 있다는 것은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되어 그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사 제목이 유쾌하지 않다고 한 것은 바로 `노사`라는 단어 때문이다. 노사(勞使)는 노동자와 회사(會社)의 줄임말이 아닌 노동자(勞動者)와 사용자(使用者)의 줄임말이다. 우선 `노동자`라는 말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5월 1일이 법적으로는 근로자의 날이다. 하지만 국제노동절(May Day)이기도 하므로 단체와 진영에 따라서 이날을 `노동절` 혹은 `근로자의 날`로 부르며, `노동자`와 `근로자`로 갑론을박을 한다.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또 공무원이건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으면 누구나 근로자이고 노동자이건만 진영에 따라 부르는 명칭을 달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더구나 5월 1일에 초중 고등학교에 출근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면 명칭의 의미가 더 헷갈린다. 아무튼, 명칭이 어떠하든 임금을 받는 조건으로 고용된 피고용인인 점은 틀림없다.

`사용자`라는 말을 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노사에서 `사`는 `사용자`이다. 근로기준법 2조에는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사용자`, 사람이 기계나 도구가 아닌데 어떻게 사람에 대해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할 수가 있을까. 법에서 `사용자`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 용어에 관해 설명할 것이 아니라 법적 용어로 모두가 아는 단어인 `사업주` 또는 `경영자`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것일까. 사람에게 `사용`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복종시키는 자와 굴복하는 자, 지시를 내리는 자와 순종하는 자로 신분의 뚜렷한 구별을 짓게 만든다.

사용자라는 언어는 종업원을 경시하는 경영자 우위의 문화가 바탕에 깔린 듯한, 종업원을 하인이나 머슴 취급하는 갑질 문화가 자연스레 싹트도록 녹아 있는 듯하다. `사람을 채용한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을 쓴다`라고 하는 말은 사람을 도구처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고 본다.

같은 한자권인 일본도 `노사`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근대화 과정에서 `노사`라는 단어 자체가 자연스레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노사를 `노동자와 자본가`를 줄여 `노자(勞資)`라고 한다. 자본가는 `자본을 이용하여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어에서도 `노사`를 `labor and management`라고 `노동자와 경영자`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 말에는 배경이 있고 그 배경에는 보이지 않게 깔린 문화가 있다. 은연중에 사용하는 말도 문제일진데 공식적으로 사업주를 `사용자`라고 칭하면 노동자는 인격이 없는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손이 모자라니 한 사람 쓰라`라는 표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사람은 쓰는 것이 아니고 채용하는 것이며, 사업주는 정당한 임금을 주고 직원을 채용하여 그 사람이 가진 노동력이나 기술력을 이용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노동자, 즉 종업원은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조력자이지 결코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자`와 `근로자`보다 중요한 것이 `노사(勞使;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단어다. 노사의 용어를 `노경(勞經; 노동자와 경영자)` 혹은 `노사(勞事: 노동자와 사업주)`로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말과 단어는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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