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23 (토)
수표한장
수표한장
  • 이도경
  • 승인 2020.12.20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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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이도경 보험법인 대표

 사람이면 누구나 믿고 지지해주고 따르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있다. 그 사람이 스승이고 친구일 수도 있다.

 내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조언을 해주시는 스승 같은 어른이 있다. 그분은 평범한 사람임에도 늘 도인 같은 좋은 기운(氣運)을 나에게 준다. 같은 장소에서 그분을 뵙지만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선생님이 읽고 있던 책갈피에서 당신이 직접 서명한 10만 원권 수표를 한 장 테이블 위에 꺼내 놓으셨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카카오 뱅크로 거래를 해서 수표 쓸 일이 거의 없다. 수표의 뒷면에는 "10,000,000,000원 확실히 보장함"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주신 수표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드니 옛날 친구가 나에게 베풀어 주었던 고마운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철 운반 사업이다. 20년 전쯤 일이다.

 다른 사업에 비해 자금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정작 고철을 실어 나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차량구입비가 부족했다.

 평소에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차용증서를 써주겠다고 했는데도 친구는 단호히 거절을 했다.

 친한 사람끼리는 돈거래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돈거래를 잘못하면 사람 잃고 돈 잃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친구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정이 철철 넘치는 친자매 같은 사이가 아니었던가!

 부끄럽고 서운하고 자존심 상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퇴근을 하는 길에 화장품 매장을 하는 친구에게 들렀다.

 속상한 마음에 돈 빌리려다 거절당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5분쯤 지났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친구가 대뜸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내가 가계수표를 한 장 끊어 줄 테니 너가 돌려서 써라." 하지 않는가. 그것도 천만 원.

 너무도 뜻밖이라 목울대에 뜨거운 뭔가가 올라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눈물이 치마폭에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친구가 나에게 빌려준 돈은 돈이 아니라 친구의 우정이었다. 친구는 우정이라 것이 어떤 것인지 나를 일깨워 주었다.

 진정한 친구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 주지 않고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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