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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과 반고의 우열 논쟁
사마천과 반고의 우열 논쟁
  • 이광수
  • 승인 2020.11.22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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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중국 24사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른 역사서는 기전체(紀傳體)로 쓴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반고의 한서(漢書)이다. 사기는 사마천이 편찬한 통사체(通史體)정사(正史)로서 중국 전설의 황제로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3천년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반면 같은 기전체 정사인 한서는 한나라 200년 역사를 기술한 단대사(單代史)이다.

사마천의 부친 사마담은 사관으로 한 무제를 보필하면서 고적을 탐방하고 역사적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을 빠짐없이 수집했다. 사마담의 사후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4년간의 준비 끝에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한시대 흉노와의 전쟁에 출정한 장수 이릉을 변호하다 투옥돼 궁형(宮刑)을 당했으나 한 무제로부터 사기편찬을 명받아 20년간의 긴 작업 끝에 완수한 후 사망했다. 반고의 부친 반표는 당시 저명한 학자였다. 그는 부친의 지도하에 일찍부터 학문을 익혀 나이 15세에 태학에 입학해 여러 책을 섭렵했다. 부친 사후 23세 때 귀향해 한서를 집필하기 시작해 20년 만에 기본적인 완성을 보았다. 황실의 도서관원인 난대령사를 지내며 명제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으나 나이 61세 때 반고에게 원한을 품은 낙양령의 사주로 투옥돼 옥사했다. 이처럼 중국 역사서의 으뜸인 사기와 한서는 뛰어난 두 천재 역사가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춘추(春秋)에 길이 남을 중국정사의 전범이 되었지만 그들의 여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기는 사기본기, 사기세가, 사기열전, 사기표로 구성된 약 50만 자에 이르는 기전체 통사이다. 한서는 한서본기, 한서표, 한서지, 한서열전으로 구성된 약 80만자에 이르는 역시 기전체 단대사이다.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이 두 역사가를 두고 누가 중국 최고의 역사가인지 논란이 분분했다. 당나라 역사학자 유지가는 중국역사학의 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통(史通)>에서 당나라 때까지의 역사서를 여섯 유파로 정리했다. 첫째가 상서가(尙書家:書經), 둘째가 공자가 지은 편년체 역사서의 원조인 춘추가(春秋家), 셋째가 좌구명이 공자의 춘추를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을 보충한 좌전가(佐傳家: 춘추좌씨전), 넷째가 좌구명이 각국의 역사서를 모아 찬술한 국어가(國語家), 다섯째가 사마천의 사기, 여섯째가 반고의 한서라고 했다. 그런데 사서편찬방식인 편년체와 기전체, 사마천과 반고에 대한 우월성논쟁은 계속되어왔다. 특히 사마천과 반고 중 누가 중국 최고의 역사가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은 뜨거웠다. 조선 세종 때 고려사 정리 시 편년체와 기전체의 편찬방식을 두고 논란이 분분했다. 이 때 세종은 기전체로는 <고려사>를, 편년체로는 <고려사 절요>를 편찬케 함으로써 학자들 간의 우열논쟁을 잠 재웠다.(이한우, 한서)후한서를 쓴 범엽은 `사마천의 글은 직설적이어서 역사적 사실들이 숨김없이 드러나며, 반고의 글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 속에 `갑반을마(甲班乙馬)`와 `열고우천(劣固優遷)`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필자가 본 주역이나 중국사, 조선 유학사에는 사마천의 사기가 반고의 한서보다 많이 인용되는 것을 볼 때 사마천이 우월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갑반을마`가 아니라 `갑마을반`에 `열고우천`이 맞다 고 본다. 진나라 장보는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반고가 사마천보다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마천의 저술은 말을 아껴 역사적 사실들을 거론해 3천년 동안에 있었던 일을 단지 50만자로 서술했지만, 반고는 200년 한나라 단대사를 80만 자로 서술했으니 말의 번거로움과 간략함이 같지 않다.`고 평했다. 두 역사서를 읽어본 필자의 견해 역시 진나라 장보의 평과 같다.

지금 중국은 서세동점기의 침체를 벗어나 중화굴기의 초강대국을 지향하면서 미국과 치열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틈새에 끼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중외교 전략은 사기와 한서를 통해 온고이지신함으로써 명쾌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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