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0:09 (토)
"가슴이 탁 트이는…내가 정상에…"
"가슴이 탁 트이는…내가 정상에…"
  • 하성자
  • 승인 2020.10.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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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시의원
하성자 시의원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는 시늉만 하다가 살짝 빠져서 차를 타고 도착지에나 가 있어야지 생각하고선 일행에 섞여 오르기 시작했다.

 한 100미터쯤 올랐을까. 길옆으로 비켜서서 호흡을 정리하며 잠시 쉬는 척하다 내심 도로 내려갈 요량으로 서 있는데, 아뿔싸! 눈치 빠른 최 선생이 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엉거주춤 이끌려 한 발 한 발 헉헉거리며 올랐다.

 한 봉우리를 넘으니 다음 능선이 어깨를 떠억 펼치고선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주눅이 들어 본능적으로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가서 쉬어요" 내 앞에 능선보다 더 깐깐하고 험난한 다른 능선이 버티고 있었다. 꼼짝 못 하고 등산, 등산일 뿐이었다.

 두 번째 능선을 반 넘게 오르고 나니 되돌아가기도 어중간하고 앞으로 가기도 막막한 상황에 놓여버렸다. 그제야 내 손을 놓고는 뒤에서 따라오며, "얼마 안 남았어요. 요기 넘고 한 고개만 더 넘으면 정상입니다" 압박인지 독려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당에 그냥 전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오르막이 힘들 때 발 간격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다. 보폭을 줄여 발과 발을 이어 붙이듯 걸으면 수직 이동보다는 수평 이동 쪽에 가깝다는 나의 알량한 계산법이 이 산에 적용되기란 조건적 요소일 뿐이었다. 산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수평 이동이 가능한 그런 길 상태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수준에선 발을 크게 벌려 양손까지 버팀목이 돼야만 하는 그런 난제가 주어진 곳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세상에, 내가! 정상에 올랐다니!

 전망이 잘 보이는 바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 조망하니 무언가 성취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맛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오름의 힘듦이 절정일 때가 언제였더라? 눈망울 초롱거리는 아기를 보면서 출산의 힘듦을 이내 망각해버리는 엄마처럼 조금 전 힘들었던 산 오름의 순간들이 까마득히 잊어졌다.

 출발은 어중간하게 했지만, 중도에서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나의 선택은 헉헉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다음에 어떤 산과 부닥친다 해도 오를 자신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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