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머리 치레거리②
한국인의 머리 치레거리②
  • 신화남
  • 승인 2020.10.16 0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화남신화남뷰티 갤러리 대표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신화남신화남뷰티 갤러리 대표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관모는 사람의 머리를 싸는 용기가 되는 것이므로 머리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종류가 다양한데, 형태상으로 크게 관, 모, 갓, 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관은 이마에 두르는 부분 위에 앞에서 뒤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 것이고, 모는 머리 전면을 싸는 것, 갓은 차양이 있는 것, 건은 한 조각 천으로 싸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것이다.

 우리의 관모 중 최초의 것은 `책`과 `절풍건`이다. 책은 머리에 매는 수건 모양의 치레거리로 문무관에 따라 그 형이 다소 달랐으며 서민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절풍은 우리나라 관모 형태의 기본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형태는 고깔모양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새의 깃을 꽂아 조우관이라고 했고, 얇은 비단으로 만들어 신분에 따라 색을 다르게 해 명칭을 달리했다. 재질에 따라서도 금동관, 백화모 등의 이름을 붙였다.

 고대에는 관모에 새 깃이나 금 또는 은으로 장식하는 관식(冠飾)이 애용됐음을 고분벽화나 문헌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죄인만 건을 쓰지 않았는데, 건 하나의 값이 쌀 1석이나 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 하반기 몽골(원) 침략 이후에는 몽고식의 발립이 있었고, 그 밑에 쓰는 것으로 현재 몽고의 유단 같은 두건도 있었다. 고려말에는 죽관이 형성되고 그 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모인 갓의 원형이 생성됐다. 왕과 관원의 관모는 중국으로부터 조공에 대한 답례로 들여온 사여의 형식을 띠고 도입해 착용했다. 그리해 왕은 면류관, 익선관 등을, 신하는 관복 입을 때 쓰는 검은 빛깔의 오사모나 각이 지고 위가 평평한 관모인 복두 등을 착용했으며 이는 한말까지 계속됐다.

 여성의 경우, 궁의 내명부는 화관을 쓰고 일부에서는 족두리를 썼으며 일반 부녀자는 대오리로 만들어 푸른 칠을 한 쓰개인 청상립을 쓰고 그 위에 나들이할 때 얼굴을 가리던 너울을 드리워 상반신을 가렸다.

 조선시대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 해 의관문물을 중요시 했는데, 외출할 때는 물론 실내에서도 관모를 착용했다. 착용하지 않을 때는 변소에 갈 때, 침상에 들 때, 죄수가 됐을 때 정도이며, 일을 할 때에도 수건을 착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관모는 개화기 이후 중절모가 들어와 일반화되면서 퇴조했고 현재는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오늘날에는 머리장식으로 자기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머리카락의 길이나 남녀에 따라 장식을 다르게 하기도 한다. 또한 외모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기도 하고 단점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머리카락은 신체 중에서 가장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거나 길게 길러서 장식품으로 변화를 줘 왔다.

 머리장식은 의복과 함께 착용했을 때 패션의 완성도를 더해주며, 의복의 우아함을 더해주는 필수적 요소로 사람들에게 애용돼 왔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머리장식들은 단순히 의복의 완성을 위한 하나의 요소에서 벗어나 다양한 표현과 실험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머리장식이 패션의 한 부분으로서 전체 패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머리장식의 특징이 동양의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표현된 새로운 조형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까지 높이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