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딸, 겨레의 딸 이이효재 선생
경남의 딸, 겨레의 딸 이이효재 선생
  • 박재근 칼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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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칼럼대기자ㆍ칼럼니스트
박재근 칼럼대기자ㆍ칼럼니스트

한국 여성학의 선구자 이이효재 선생은 경남의 딸이다. 향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한 경남의 딸 한국 1세대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우리 곁을 떠났다. 20대 여성 절반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는 세상, 이 변화의 물결을 주도한 ‘한국 여성운동 1세대’의 선구자였다.

지난 4일 타계한 이이효재 선생은 1950년대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1970년대부터 여성학ㆍ여성운동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본격 조명했다. 여성운동에 나선 1970년대 당시 전국 기혼여성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농촌 여성의 68%가 남편에게 첩을 두어서라도 아들을 낳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성(性)의식은 남존여비(男尊女卑)에 갇힌 상태였다.

이처럼 사회구성원 모두가 가부장적 제도ㆍ관념에 빠져 있을 때 남녀관계는 고정불변한 게 아니란 젠더 시각으로 경남의 딸 이이효재 선생은 여성 문제를 파헤쳤다. 특히, 한국 여성이 가부장제뿐 아니라 식민지배, 분단현실, 독재정치, 자본주의 산업화 등 다층적 억압 아래 놓여 현실을 절감, 학문 연구와 실천운동에 나섰다.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남녀의 성 역할만 강조했지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차이, 즉 젠더가 빚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은 외면했다. 강단에서는 불평등한 여성의 현실을 이론화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교과서로 불리는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1979년)’의 저자가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첫 여성학과가 개설됐고 첫 여성학문단체인 여성한국사회연구회가 창립됐다. 이후, 신입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식세례를 받았다.

또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ㆍ정의기억연대의 전신) 등 단체 활동을 통해서는 현실을 바꿔 나갔다. 가족법이 개정되고 남성 중심의 호주제가 폐지됐다. 이름에 부모 성을 나란히 쓰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부모 성 같이 쓰기,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등 강단과 단체를 오가며 맺은 열매는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1990년 정년을 맞은 그는 7년 뒤 부모의 고향인 경남으로 내려왔다. 진해에서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풀뿌리운동에 헌신했다. 2008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교수 대신 지역 활동을 했더라면 세상이 조금 더 변화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진로 선택에 뒤늦은 ‘후회’를 고백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윤미향 당시 국회의원 당선자의 횡령ㆍ배임 의혹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초대 대표였던 이 선생 등 명의를 넣은 12인 원로 성명을 발표했다. 윤미향을 두둔하는 내용이었다. 이 선생은 즉시 유감을 전했다. 출범한 당시 정대협은 모금운동을 벌이거나 정치권에 참여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선생의 여성주의는 성(性)평등에 기초한 인간해방이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투쟁이 아닌 모성에 부성의 사랑이 더해질 때 페미니즘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반세기를 헌신한 여성운동 역사에도 갈 길은 멀다. 노동현장과 가부장적 직장문화, 낙태죄 문제, 전문직 성차별 철폐 등 남은 과제는 후배들의 몫이다. 경남의 딸, 겨레의 딸 이이효재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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