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8:18 (토)
한국광복군 창립 80주년를 맞는 의미
한국광복군 창립 80주년를 맞는 의미
  • 김기원
  • 승인 2020.09.22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김기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이 낙동강 방위선에 유엔군 참전으로 전세가 호전 될 무렵 필자는 중학생, 그때 새로 교련관 A선생이 부임했다. 그 분은 대한민국 광복군 출신으로 소개된다. 교관의 첫 말씀이 뼈아프다. 그 이유로 한국광복군 통수권자 주석 김구선생을 모시고 광복군으로 당당하게 귀국 못하고 개별 귀국하게 됨을 책상을 치며 한탄하는 모습이 가끔 머리를 아프게 한다.

 교관은 본래 부산 동래 지주 출신, 부친이 미나리농장을 경영했는데 미나리 공출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동래경찰서로 끌려가서 백지각서를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해 반병신이 된 모습을 보고 부친의 미나리 판매 주머니를 털어 학생복 차림으로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처 중국 길림성까지 일경의 눈을 피해 수소문 끝에 한국 광복군부대를 찾아 입소했고 미나리 판매대금도 헌납한 한 토막 실화였다.

 17세 청년은 주석 김구선생 앞에 몸을 조국을 위해 바치겠다는 혈서를 쓰고 군복을 갈아 입었다. 삭풍이 몰아치고 영하 20~30도 추위를 이기며 언제 일군의 습격을 받을지 긴장 속에 이동하며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받친 실화 내용이 당시 젊은이에게 많은 교훈을 줬고 6ㆍ25 한국전쟁 때 젊은이의 참여를 독려하는 모습과 교관선생의 호국관이 뼈에 사무치게 생각이 난다.

 또한, 9월 9일 학교 뒷산에 올라 광복군으로 진사한 전우들 제사자리에 몇 차례 참석하면서 제문 낭독 때 가슴에 북받치는 울분에 한바탕 울었던 생각이 떠올라 광복군 자료를 확인한바 올해 9월 17일 한국광복군 (韓國 光復軍)창립 80주년임을 알게 됐다.

 과거 36년 간 일본이 우리 조국을 병합 통치하는 동안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정신은 불명예스러운 노예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무자비한 압박자에 대한 영웅적 항전을 계속해 왔다. 우리 국가의 해방운동과 특히 우리의 압박자 왜적에 대한 무장 항전의 준비는 그의 도의적 지원으로 투쟁을 감행해 자유,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였다. 해방 자체가 우리민족의 힘이 아니라 외세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아 초기역사는 그야말로 주체성 없는 혼란기였다.

 과거 혼란 시대의 내용을 묻기보다 80년이 지난 오늘에 살아가는 후손들은 혼란기의 과거사를 토대로 잘잘못에 억매이거나 방치하기보다 잘못을 누치고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과감하게 대한민국 역사를 정확히 찾아야 한다. 외국 역시 독립된 날, 외세에 크게 항거한 날, 국가 정치, 운영 형태가 바뀌는 날 등을 고려해 국군의 날 역시 역사와 전통성이 퇴색됨 없이 전통적 가치관을 살리는 것도 대한민국 광복군 80주년를 맞아 제자리찾는 의미라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