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5:16 (토)
풍선껌처럼 시를 써 볼까요!
풍선껌처럼 시를 써 볼까요!
  • 경남매일
  • 승인 2020.08.24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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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봉백미늠 시인
구지봉백미늠 시인

오늘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한림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시 특강을 하는 첫날이에요.

몇 달 전 강의 요청을 받고 매우 기뻤어요. 열심히 강의 노트를 만들고 ppt 자료도 멋지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막상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났어요. 시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잘 쓰지도 못하는 내가 어쩌자고 강의 요청을 수락했을까 걱정이 되어 한잠도 못 잤어요.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는 대로 봉화산 어깨를 넘고 널따란 들판을 지나고 양팔을 벌리고 있는 가로수 속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즐거워졌어요. 이렇게 예쁜 자연 속에 사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빨리 만나고 싶어졌어요. 학교 운동장 옆 청운 숲에서는 촉촉 책책 새소리가 들렸어요. 교실에서 책 읽는 아이들 소리를 닮은 것 같았어요.

“반가워요 여러분들은 잠을 잘 잤나 보네요 모두 뽀송뽀송하네요”, “빗소리 천둥소리에 잠이 자꾸 깼지만 졸려서 다시 잤어요” 누군가 하품하듯 말했어요 모두 마스크를 꼈지만 생기발랄했어요. 시는 껌이에요 풍선껌이에요! 시를 쓰는 것은 풍선껌을 불 때와 같아요. 단맛을 마음껏 즐기다가 심심해진 상태에서 입안에서 오물오물 거려 내 몸이 공기가 되어 가만히 만드는 풍선과 같아요.

툭 하고 풍선이 터지듯 시도 그때 그 순간이에요. 힘을 주면 풍선이 안 만들어져요. 욕심을 내어도 풍선이 안 불어져요. 시도 그래요. 가만가만 혼자 하는 말이에요. 가만히 보고 가만히 들으면 보이고 들려요. 보이고 들리는 것을 바로 적으면 시가 되는 거에요. 엄마가 하는 말 아빠가 하는 말 친구가 하는 말 꽃과 나무와 새와 햇빛 구름이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받아 적으세요. 강의 노트와 상관없는 말들이 주절주절 나왔어요.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자신감을 보였어요.

나쁜 코로나 썩 물러가라는 시, 싹트는 사랑을 살짝 고백하는 시, 자신의 신체장애를 쓴 시, 노래 부르며 쓰는 아이, 그림도 같이 그리며 쓰는 아이, 못 쓰겠다는 아이는 한 줄 시를 썼어요.

코로나19 (신시현)

코로나19야/어디를 가느냐

우리를 집콕 시켜 놓고/어디를 가느냐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조용히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

염소 (염동훈)

염소야 염소야 어디를 가느냐

펄쩍펄쩍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농장을 농장을 친구와 넘어서

길쭉길쭉 풀들을 먹고서 올테야

유투버의 길 (김승훈)

승훈아 승훈아/어디를 가느냐

편집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딸각딸각 좋은 구독 많이 얻어 올 테야

모발 (허인혁)

인혁아 인혁아/어디를 가느냐

와다다다 뛰어서 어디를 가느냐

김해 한림 너머 있는 진영 병원에 간단다

나도 길쭉길쭉 머리카락이 나올 거야

아이들의 시 읽는 소리에

교실 밖 새들과 나무와 많은 벌레들이 귀를 바싹 기울이는 듯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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