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5:55 (토)
[수필]까가 주세요②
[수필]까가 주세요②
  • 경남매일
  • 승인 2020.08.03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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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시인ㆍ수필가ㆍ패션디자이너
동주대학 패션디자인 전공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 전공

 어느덧 1년이지나 아침 일찍 길 건너 입구에 이삿짐이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2층 학생들의 이삿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아있고 보증금도 줘야하는데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저녁에 올게요 하며 가버린다. 잘 가란 말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 보기만 했다.

 종일 우울한 기분이었고 그동안 정이 들었는데 이사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리는 학생이 너무 서운하고 괘씸했다. 역시 외국인은 어쩔 수 없다니까.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꿀꺽 삼켰다. 벽지며 엉망으로 해놓은 싱크대, 그동안 받은 월세보다 더들어가게 생긴 보수비용에 괜히 외국인에게 세를 놓았다는 후회까지. 속상한 하루였다.

 그날 해가 저물자 집 앞이 소란해 내다보니 이삿짐이 도착했다. 다시 오는거냐고 물었더니 다른 학생이 온다고 청소, 도배지 필요 없어요 하며 공과금, 보증금을 지네들끼리 말끔히 해결하고 있었다.

 손에는 비닐봉지가 두 개. 내가 만두와 김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야식으로 먹으라고 이모 고마웠어요 하며 내민다. 가슴이 먹먹해 눈물이 왈칵 쏟았다. 잠깐만이라도 오해했었던 미안함, 예의바르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아이, 외국인이란 편견이 정말 부끄러웠다. 그 후에 10년 동안을 중국 학생들의 전용 월세 방으로 보증금과 월세는 그대로 고수하는 난 보수비용 없는 횡제였다.

 중국에 오면 꼭 들려달라고 손에 쥐어준 전화번호. 가끔 연락하고 살았지만 핸드폰 분실로 연락이 두절됐다. 아직도 중국은 가본 적이 없다. 잘 살고 있는지!

 `까가 주세요.` 이 말을 떠올리면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 향처럼 번지는 미소가 왠지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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