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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양학자들의 주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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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매일
  • 승인 2020.07.1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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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동양철학의 진수인 사서육경(四書六經)은 이씨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실천적 밑바탕이 되었다. 중국에서 나왔지만, 조선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돼 지금까지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우리 못지않게 높다는 것을 각종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 경제권의 급부상에 따라 아시아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논어, 주역 등 동양철학에 대한 연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서구의 쇠락에 따른 반작용으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다. 그중 주역에 대한 구미학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특별한 것 같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스콧 크리스텐슨이 쓴 <세상을 바꾸는 100가지 문서: Documents that changed the world>에는 역경(I-ching)을 목록 첫 번째 순서에 올려놓았다. 이 책은 아마존 `이달의 책`에도 선정됐으며,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인 하버드, 프린스턴,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인기 강좌로 각광을 받았다. 이 책에서 크리스텐슨은 주역은 해당 행동이 행운을 가져다줄지 불행을 가져다줄지를 알려주지만, 점술서는 아니라고 했다. 이는 과학 문명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학자가 주역은 미신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칸트의 합리주의 사상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주역연구가 붐을 이룬 것도 바로 주역이 상수와 의리의 관점에서 지극히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인 철학이기 때문이다.

 <실증주역>의 저자 황태연 박사는 동서양 주역 연구자들의 계보와 연구 이력을 이렇게 열거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공자십익과 우번, 정현, 순상, 초공, 경방, 최경, 곽박, 마융, 육적, 왕필, 이정조, 이도평, 정이, 주희, 소식 등 중국 고대와 중세의 고전적 주석서와 현대중국의 고형, 등구백, 요망춘 등이 그 계보다. 조선에서는 김장생, 이이(율곡), 이퇴계(이황), 다산 정약용, 한국의 김경탁을 꼽는다. 서양의 경우 빌헬름, 피델리, 앤서니, 린, 머피, 클리어리, 후앙, 러체마, 카처, 블로펄드, 우징누안, 마커트 등이 주역의 대가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물리학자 라이프니츠,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유가와 히데끼(노벨물리학상 수상), 존슨 얀(DNA와 주역의 관계해석자), 심리학자 칼 융, 대문호 요한 괴테와 헤르만 헤세, 시인 옥타 비오피스(64괘를 활용한 멕시코 시인) 등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대문호, 심리학자들이 주역연구에 몰두했다. 주역이 비과학적인 미신이었다면 이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았겠는가. 주역에 대한 한국 개신교도들의 경도된 시각은 주역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과 편견(미신)일 뿐이다.

 주역을 이론적으로 깊이 연구한 로버트 후앙 등 서구학자들의 주역해석을 살펴보자. 로버트 후앙은 그의 저서 <완전한 주역: Complete I-Ching>에서 한나라 문왕과 주공의 행적을 주역 해석에 대입해 64괘를 풀이하고 있다. 그는 건괘(乾卦)의 초구(1효)에서 구사(4효)까지를 문왕의 행적과 고사로, 구오(5효)를 주공의 역성혁명으로, 상구(6효)를 몰락을 앞둔 은나라 주왕의 처지로 해석한다. 빌헬름은 중지곤괘 이빈마지정(利牝馬之貞)을 곤괘의 암말은 건괘의 용이 하늘의 동물이라면 암말은 땅의 동물로 광대한 대지를 내달리는 말의 힘과 속력을 소의 부드러운 헌신성과 결합시킨 상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선미후득주리서남득붕(先迷後得主利西南得朋)해석을 두고 동서양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정자와 주자는 선과 후를 선하면 미혹하고 후하면 득하니 주리하다로 현토하고 주리를 이익을 주장하다로 새겼다. 그러나 빌헬름과 후앙은 선하면 미혹하고 후하면 득주하다로 현토하고 이(利)는 뒤에 붙여 서남으로 가면 조력자를 얻어 이롭다로 해석한다. 블로펄드, 우징누안, 클리어 등은 흔한 방식으로 선과 후를 부사로 보아 먼저는 미혹하고 후에는 주군을 얻는다고 현토하고 영역했다. 이처럼 주역 해석에 대한 동서양 학자들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역의 본질에 대한 의미해석에는 동질성을 공유한다. 주역은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학문으로 우주 만물의 생성소멸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실천철학이다. 따라서 주역을 오용해 혹세무민하는 일부 명리주술사들의 말에 현혹돼 일희일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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