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15 (금)
21대 국회,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그리고 우려된다.
21대 국회,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그리고 우려된다.
  • 박재근 기자
  • 승인 2020.06.07 1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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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21대 총선 이후, 세상이 바뀐 것을 확실히 느꼈다. 희한하게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요지경 같다. 설마 했는데 국민이, 경남도민이 기대한 협상의 정치는 간곳없고 지난 5일 거대여당이 단독국회를 개원하는 힘자랑도 했다. 국회법상 정시개원(開院)이라지만 7대 국회 개원 때(1967년) 야당이 울산에서 터진 부정선거를 이유로 국회등원을 거부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신독재 때도, 서슬 퍼런 신군부 때도 두 번 다시 하지 못 했던 단독국회 개원이었다. 민주화 세력이라 해도 53년의 시차를 두고 그들이 비난한 권위주의 독재정권 행태를 답습한 결과와 다를 바 없어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

제 1야당이 빠진 `반쪽짜리` 본회의는 여야 협상을 통해 국회를 운영해온 관례조차 무시한 독선적 국회운영으로 상생과 협력의 정치에 희망을 품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177석 거대(巨大) 여당은 국민이 `일하는 국회`를 명령했고 이를 위해 다수결 원칙에 따른 법치를 지켜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나 단독 국회는 177석의 거대여당이 상임위원장 18개를 싹쓸이 하겠다고 해서 협상이 불발된 것이다.

야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의 야당 몫 요구를 고수할 경우 `승자독식주의` 원칙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올 수 있고 상임위원장 선출도 국회법상 시한인 8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예고했다. 접점을 찾지 못하면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상임위원장 독식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 여당(민주당)은 81석이었던 지난 2008년 18대 국회 때도 6개 상임위원장을 받아갔다. 민주화 이후 관례인 의석비례로 나누면 103석인 야당(미래통합당)에 7개 상임위는 배분돼야 한다.

그 불문율을 깨는 게 원칙인양, 단독 개원을 단행한 여당은 올챙이 적 생각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것 같다. 일하는 국회를 위해서는 법과 원칙만큼이나 협상과 타협도 중요하다. 21대 국회, 관례를 깬 첫 단추부터의 국회 파행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또 21대 국회 개원을 전후 봇물 터진 듯, 넘치는 백가쟁명식의 주장과 과거사 메시지는 옳고 그름에 앞서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친일파 vs 전쟁영웅으로까지 번진 서울현충원의 파묘(破墓) 논란을 몰고 온 민주당 Y의원의 `법관탄핵` 추진 발언에 대해 "자신의 정체를 까발렸다고 애먼 사람을 부역자로 몰아 잡겠다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강압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며 `판결 뒤집기`에 열을 올리고 지난 1987년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재조사 주장도 나왔다. 이 사건은 2007년 현 정부의 전신인 노무현 정부가 재조사를 벌여 `북한 공작원에 의한 사건`임을 재확인했다.

그런데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여순 반란 사건, 제주 4ㆍ3, 촛불 때 계엄사 문건 등 줄줄이 거론된다. 현 시국은 `전시(戰時) 재정`을 주문할 정도로 코로나 사태로 경제위기가 다급한 상황인데 쓸모 짝에도 없는 과거사 뒤집기의 사화(士禍)로 날을 지새우다 망한 조선시대 같다는 말도 나온다. 또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 유포행위를 강력 처벌하는 법안도 논의되고 있다. 극단적 비방이나 명예훼손은 기존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단죄할 수 있다. 또 법적 처벌뿐 아니라 공론의 장(場)에서 걸러지는 게 민주주의 원리다. 그런데도 기존 법 위에 더 강력한 처벌법 논의에 대해 `그 입 다물라`던 지난 TV극 중의 대사가 새삼 회자된다는 것은 기득권적 발상이 부른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로마는 승리한 개선장군의 시가행진 때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친 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란` 의미다. 거대 여당 민주당, 개헌 말고는 못할 게 없다. 그렇다고 제1야당을 배제한 채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 21대 국회, 정치는 협상이며 협치 관행은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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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2024-04-02 09:34:13
총선이 끝나면 유가·환율 등 소비자 물가가 얼마나 오를까?
지금껏 정부의 물가 대책은 다분히 즉흥적이고 땜질식이었다. 대대적인 지원 정책도 대부분 국민 세금으로 물가 인상분을 메꾸는 방식이었다.
이런 대책은 금방 한계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이제부터라도 물가 형성 과정을 자세히 추적해 지속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공공요금 관리에서도 선제적으로 인상 요인을 완화·분산하는 등 운용의 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치권도 물가 잡는 데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무차별적인 ‘돈 풀기’ 경쟁은 물가 상승 불길에 기름 붓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현시점에서 민생 살리는 첩경은 바로 물가 안정임을 정부와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