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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버린 비운의 천재 최치원
신라가 버린 비운의 천재 최치원
  • 경남매일
  • 승인 2020.04.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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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절체절명의 난국에 처했을 때 지도자가 어떤 인재를 중용해야 하는지 증명됐다. 시대를 잘 타고 나야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천재성이 빛을 본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지난 역사에서 통찰할 수 있다.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큰 뜻을 펼쳐보지 못한 대 문장가 고운 최치원은 비운의 인생을 산 천재였다. 최치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학창 시절에 역사시험에 나온다고 달달 외운 덕분이다. 그의 문장은 신라보다 중국 당나라에서 더 유명했다. 그는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해 18세에 당나라 과거에 급제했다. 고운이 당에 머물 때 그가 교우하는 문사들과 관리들은 최치원의 글 한 편 받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다고 하니 고운의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은 어린 시절을 제와하고는 절반의 삶을 중국 당나라에서 보냈다. 20대 초에 회남 막부에 종군 중인 절도사 고변의 종사관(임시직 비서)으로 일했다. 전쟁터인 회남 막부에서 황제에게 올리는 수많은 보고서와 전항 보고인 군서를 밤낮으로 혼자 도맡아 작성하느라 관복에 먹 냄새가 배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 감히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황소의 농민 반란군이 당나라 낙양을 함락하고 수도인 장안을 점령하자 황제와 신하들은 사천 땅으로 피신했다. 텅 빈 장안성을 지키던 최치원은 황소의 군대를 진압하던 회남 절도사 고변으로부터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을 쓰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때 고운은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쓰게 된다. 이는 격문으로 반란군의 수괴인 황소를 호령하고 꾸짖는 내용으로 자수해 투항하라는 최후통첩 같은 글이었다. 그때 고운의 나이가 겨우 25세였으니 그의 천재적인 문장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그의 격문에 간담이 서늘해진 황소가 침상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땅속의 귀신들도 남몰래 너를 베어버리기로 의논하였다/그러니 네가 숨이 붙어 돌아다니는 것 같아도/넋은 이미 귀신에게 빼앗기고 없을 것이다.` 격문 내용으로 보아 반란군 수괴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 분명하다. 고운의 명문장에 감복한 당 황제는 일개 군 막사의 종사관인 그에게 황제를 곁에서 모시며 명을 받드는 시어사내공봉이란 관직을 내리며 `자금어대`까지 하사했다. 그러나 고운은 황제에게 고두의 예를 올리고 두 손 높이 들어 하사품을 받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젠가 세상이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알아주고 쓰일 때를 기다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칭송받기보다 내 나라 신라 백성 속에서 성현의 가르침을 현실 정치에 펼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884년 10월. 19년을 당나라에서 보낸 그는 그리던 고국 땅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신라는 기울어져 가는 쇠락한 국운으로 그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가 포부를 펴기엔 신라의 골품제도가 걸림돌이었다. 육두품제의 엄격한 시행으로 인재를 등용하다 보니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큰 공이 있어도 진골과 성골이 아닌 이상 장군이나 고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작은 벼슬자리를 전전하다 귀국한 지 10년이 되는 894년 무너져 가는 신라의 주춧돌을 다시 쌓으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다시 붓을 들었다. 시급히 정비해야 할 시무책 십여 조를 써서 진성여왕에게 올렸다. 타고난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한 고운은 저작에 몰두하며 산사에 은거했다. 마치 공자가 자신의 정치 이상 구현을 위해 북중국을 13년간 떠돌았으나 알아주는 군주가 없음을 한탄하고 후학 양성에 매진한 것과 다름없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으니/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 없어라/창밖은 깊은 밤비 내리는데/등불 앞 내 마음은 만 리를 달리는구나.` 고국 신라로 돌아왔건만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알아주는 이 없는 것을 한탄한 시다. 예나 지금이나 인재 등용에 눈뜬 현명한 리더는 드물고, 권력 탐욕에 눈먼 재방들의 농간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운` 같은 비운의 천재들은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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