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느끼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거제 병아리국’
계절을 느끼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거제 병아리국’
  •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 승인 2020.03.27 0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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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과 떠나는 맛있는 여행

거제 ‘명화식당’

매화꽃 피면 황금빛 몸놀림으로 유혹
‘실치’ㆍ‘뱅어’와 비슷하지만 더 납작해

죽으면 흰색으로 변해 ‘사백어’라 불러
회ㆍ전ㆍ국 등 풀코스 3만원으로 즐겨
병아리회ㆍ전ㆍ국은 계절에 민감한 미식가에게 입맛을 찾아준다.
거제에 위치한 명화식당 전경.

 

 

 

 

 

 

 

 

대지에 봄기운이 솟아나 얼음 깨지는 동빙(凍氷)소리가 나고 매화꽃 피면 사천, 남해, 거제 지역 바다 어부들의 그물에 병아리가 황금빛 몸놀림으로 봄을 유혹한다.

매화꽃이 피고 벚꽃이 지는 약 한 달에서 한 달 보름간 남해안에서만 잡히는 ‘병아리’를 ‘앵아리’라고도 한다.

주로 봄철 멸치잡이를 할 때 함께 많이 어획되는 ‘병아리’는 충남 당진 지역에서 잡히는 베도라치 치어인 ‘실치’나 ‘바다빙어목 뱅어과’인 ‘뱅어’와 비슷하지만 몸이 칼국수마냥 좀 더 납작하게 생겨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병아리’는 ‘사백어 (死白魚시로우오 シロウオ)’라고 한다. 죽으면 흰색으로 변한다 해서 ‘사백어 (死白魚)’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일본에서는 노레소레(のれそれ)라고도 부른다. 체장 6㎝ 안팎에 칼국수 가락처럼 넓적하고 두께는 얇다.

남해안에서 나는 ‘병아리’ 즉 ‘사백어 (死白魚)’의 정체는 붕장어의 치어(穉魚)다.

19세기 전기 거제시 거제면에 거주했던 거제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선생은 사백어(死白魚)가 물가에서 노는 것을 보고 7언율시 한 편을 남겼는데, 하천에 얼마나 많은 사백어가 올라왔으면 ‘하천 바닥에 실이 유영하는데 주름진 비단을 두른 듯하다’고 표현했을까. 촘촘한 대나무로 만든 족대 자루로 사백어(死白魚)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제도의 명물 사백어(병아리)의 한시 한 편을 감상해 보자.

‘기명수결면조균’ 살갗이 투명하고 뼛골이 깨끗하니 두루 뱅어(면조)라 부르는데 ‘춘난방주역수준’(春暖芳洲逆水遵) 따뜻한 봄날, 아름다운 물가에 역류하는 물을 따라 올라왔다.

‘천저유사영무곡’ 하천 바닥에 실이 유영하니 자욱한 주름 비단을 두른 듯하다가 ‘조두난서수풍륜’(潮頭亂絮遂風輪) 밀물에 어지러운 솜이 바람 따라 떠다닌다.

‘섬주수밀난위강’ 거미는 가는 줄로써 촘촘히 거물 짜기 어렵고 ‘독견유추부족륜’ 누에고치는 홀로 그물을 대충 짤 수도 없다네.

‘인학역낭재대포’ 어망 자루를 본뜨려고, 거친 피륙으로 만들고는 ‘각의필병리수균’ 다시 마른 대나무로 꿰매어 족대 자루를 완성했다.

나는 옛 시를 떠올리며 ‘병아리’ 맛을 보기 위해 거제 동부면사무소 앞에 있는 명화식당(거제시 동부면 동부로 13 구주소 : 동부면 산양리 373-1)에 전화를 했다.

‘병아리’ 요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차를 몰아 식당을 찾아갔다.

작은 식당 안에는 ‘병아리’ 요리를 먹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병아리 요리 풀코스(3만 원)를 시켰다. 먼저 병아리회가 나왔다. 야채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황금빛 병아리 비위 약한 사람은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병아리회 접시에 초장을 부으니 사방으로 초장이 튈 정도로 움직인다. 이것을 요령 있게 먹어야 한다. 입 안에 넣고 씹기도 전에 산채로 목구멍에 넘어가는 놈도 있다.

예전에 당진에서 맛본 후루룩 마시듯 먹는 ‘실치회’와는 전혀 다르다. 조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병아리를 소금 등으로 숨을 죽인 후 ‘실치회’처럼 먹을 수 있게 한다면 좋을 듯싶다.

옛날에도 날것을 국수 먹듯이 후루룩하고 먹었다고 해서 ‘국수’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병아리 전은 입안에 착 감길 정도로 맛이 있다. 특히 병아리국은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 흔히 해 먹는 향토음식으로 병아리가 마치 흰 국수와 같다.

조선전기 문신 이승소(李承召 1422~1484)는 “백백강어미 개람희불금(白白江魚美 開藍喜不禁) 희디흰 강물 고기 아름다워, 보자마자 기쁨을 금할 수 없네.” “만전공일식 영고역하심(万錢供一食 穎考亦何心) 일 만전(万錢)을 주고 뱅어 한 끼 먹고 싶은데, 어머님 생각에 고기를 먹지 못한 영고숙(穎考叔) 또한 어떤 마음이었을까?”라고 읊었고, 조선 중기의 문신 이정암(1541~1600)은 뱅어(白魚)를 맛보곤, “감지봉친금불득(甘旨奉親今不得) 이제는 좋은 맛으로 부모를 봉양할 수 없으나, ‘상신편각파첨거’ 올해의 새로운 맛을 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라고 탄식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허백당(虛白堂)ㆍ성현(成俔, 1439~1504)의 ‘허백당보집(虛白堂補集)’ 제2권 시(詩)에 ‘백어 즉두시소위백소금인위지면조어’ 백어 즉 두보(杜甫)의 시에서 말한 백소인데, 지금 사람들은 면조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아마 백어(白魚)가 국수 가닥 같아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의 백어(白魚)에 대한 시(詩)를 소개하면

백소승한만수생(白小乘寒滿水生) 강추위가 닥친 강에 백어가 가득해져 ‘부빙차망홀래영’ 얼음 깨고 망 던지니 그물에 금세 가득 ‘출분세미은사란’(出分細尾銀絲亂) 가는 꼬리 파닥이니 은실이 어지럽고 ‘동합풍기옥근명’ 통통한 살 얼어붙어 옥 근육이 투명하네 ‘색영화자의소설’ 꽃 접시에 비친 색은 흰 눈이 뭉쳐진 듯 ‘연탄아치미소팽’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새로 졸인 맛이로다 ‘화연갑제쟁상치’ 부잣집들 잔치 때면 앞다투어 찾는지라 ‘차물수미가불경’ 하찮은 고기지만 값을 무시 못한다네.

현지 어민들의 말을 빌리면 “앵아리는 3, 4월쯤 봄 멸치를 잡기 위해 설치한 정치망이나 권현망, 남해 죽방렴 등에서 멸치와 함께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먹지 못하는 것이 바로 병아리 요리다. 경남 연안의 정치망에서만 해마다 20t 정도 채취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잡은 병아리는 봄철 별미로 초장에 버무려 먹는 회와 회무침, 갖은 봄나물과 함께 끓여 먹는 된장국, 병아리를 넣은 계란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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