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57 (토)
남해 `죽방멸치쌈밥` 혀를 감아 도는 봄 멸치 최고 맛
남해 `죽방멸치쌈밥` 혀를 감아 도는 봄 멸치 최고 맛
  •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 승인 2020.03.12 2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복과 떠나는 맛있는 여행
남해군 ‘손도죽방장어’

‘죽방멸치’ 멸치 중 최상품 인정받아
물고기 힘 좋고 손상 없어 ‘싱싱’

봄 입맛 돋우는데 멸치요리 최고
멸치쌈밥ㆍ회ㆍ붕장어구이 메뉴
정식 시키면 멸치찌개ㆍ장어구이 나와
상추ㆍ깻잎에 싸 먹으면 감칠맛 젖어
멸치찌개와 멸치회무침, 장어구이가 세트로 나오는 멸치정식.
상추와 깻잎을 포개 멸치찌개를 싸서 입에 넣으면 온몸에 봄기운이 스며든다.

남해군의 삼동면 지족리(知足里)와 창선면 지족리(只族里) 사이에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그곳을 지족해협(知足海峽)이라 한다.

지족해협(知足海峽)에 놓여진 창선교 다리 위에서 보면 다리 양옆 바다에 우리 선조들이 고안해 낸 전통 어업방식인 죽방렴(竹防簾)이 눈에 띈다.

지난해 8월 18일 문화재청은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竹防簾)을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71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3호로 지정했다.

남해 삼동면과 창선면 사이의 해협은 좁은 바다로서, 시속 13∼15㎞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물이 드나드는 어귀)이다.

1469년(예종 1)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의 남해현에 관한 내용에는 오래된 전통어업으로 지족해협에서 행해진 죽방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물목이나 바닷가에는 고정식 그물이라 할 수 있는 죽방렴이나 독살을 설치했다.

독살은 길게 돌을 쌓아 밀물 때 잠겼던 돌 그물 안에 갇힌 고기를 물이 빠진 후에 잡는 방식이다.

죽방렴은 물목에 V자형으로 참나무 말목을 박고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 세워 물이 빠진 후 갇힌 고기를 잡는 방식을 말한다.

이 죽방렴(竹防簾)은 서해안과 남해안에 발달돼 있다. 독살 역시 서남해안은 물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곳에 설치돼 있다. 독살은 독담 또는 석방렴(石防簾)이라고 하며 해남에서는 ‘쑤기담’, 제주에서는 ‘원담’이라고 부른다.

남해 손도죽방장어 식당 전경.
V자형 참나무 말목을 박아 멸치를 잡는 죽방렴.

 

남해 죽방렴(竹防簾)에서 잡는 멸치를 일명 ‘죽방멸치’라 해 최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곳 멸치가 유명한 이유는 지족해협의 물살이 거칠기 때문에 물고기의 힘이 좋고, 그물을 사용하지 않고 뜰채로 떠내는 방식으로 잡아서 멸치가 손상되지 않고 싱싱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절을 느끼는 오감(五感) 중 미각(味覺)이 제일 먼저 알아차릴 정도로 제철음식에 민감한데, 봄의 입맛을 돋우는데 멸치요리만 한 음식은 없을 것이다.

죽방렴(竹防簾)의 고기잡이는 3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데, 난류성 어종인 멸치는 겨울에 비교적 따뜻한 외해에 머물다가 3월 중순에서 5월 중순 사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다. 이 무렵 남해안 연안에서 잡히는 멸치는 그 크기가 무려 10~15㎝에 달하는 ‘대멸’로 체내에 지방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생멸치는 봄가을에 풍성한데 맛으로 치자면 봄이 월등하다.

봄 멸치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맛 좋은 생선으로 꼽힌다. 멸치(蔑致), 멸어(滅魚), 수어(水魚)라고도 부르는데, 멸치와 멸어는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이고 수어는 ‘물고기의 대명사’라서 붙은 이름이다. 삼천포 연륙교를 지나 남해 창선교를 건너면 지족삼거리에서 해안도로로 들어서면 멸치쌈밥을 비롯한 멸치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보건소 옆에 위치한 손도죽방식당(남해군 삼동면 지족리 266-15)에 들어갔다.

이 집은 멸치쌈밥과 멸치회와 함께 붕장어구이를 하는 집이다.

멸치쌈밥을 먹으러 왔는데, 멸치정식을 시키니 멸치쌈밥에서 빠질 수 없는 멸치찌개와 멸치회무침. 장어구이가 세트로 나온다.

통멸치에 고춧가루와 마늘, 시래기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멸치찌개에서 멸치를 건져 쌈밥처럼 싸 먹는 멸치쌈밥 시식의 대 장정에 돌입했다.

상추와 깻잎을 포개 멸치찌개를 싸서 입에 넣으니 내 온몸에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며 입안은 이미 호사스러움과 감칠맛에 젖어 있다.

특히 장어구이의 양념 맛과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채 10분도 안돼 그릇이 비워졌다.

그런데 어쩌랴 복부비만으로 항상 긴장하며 식탁에 앉는데, 멸치회무침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밥 한 그릇에 멸치회무침과 상추를 찢어 넣고 비벼 입 안에 넣으니 새콤달콤한 그 맛에 오늘 먹고 내일 죽는다 해도 한이 없을 것 같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식한 이번 맛, 기행 볼록한 내 배는 분명 직업병이랄 수밖에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