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6:04 (토)
겸의 공간이 부족한 세상
겸의 공간이 부족한 세상
  • 이광수
  • 승인 2020.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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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주역에 지산겸괘(地山謙卦)가 있다. 64괘 중 상경(上經) 15번째 괘이다. 겸(謙)은 괘 됨이 곤(坤:땅)이 위에 있고, 간(艮:산)이 아래에 있으니, 땅속에 산에 있는 것이다. 땅은 낮아 밑에 있는 것이고, 산은 높고 큰 것인데도 땅 아래에 있으니 겸이 상(象:괘의 형상)이고 숭고한 덕으로 낮은 것의 아래에 처하니 겸의 뜻이다. 즉, 높은 산(삼남)이 땅(어머니) 아래에 있는 괘상이니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 해석의 양대 산맥인 정자(程子)의 정전에 `군자가 마침이 있다(君子有終)` 함은 군자가 뜻을 겸손한데 두어서 이치에 통달했기 때문에 천명을 즐기면서 다투지 않고, 안이 충실하기 때문에 물러나고 양보하면서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함을 편안하게 이행해서 종신토록 바꾸지 않으니 스스로 낮춰도 사람들이 더욱 높이고, 스스로 감춰도 덕이 더욱 찬란하게 나타나므로 이를 두고 `군자가 마침이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겸손은 군자(지도자)가 지켜야 할 도리로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으뜸 덕목에 속한다.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오만방자해져 독단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수신지도(修身之道)로서 겸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겸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정신 못 차린 얼빠진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 등 제 영역에서 겸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자리 준다면 염치불구, 후안무치한 자들이 찰거머리처럼 달려든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라는 문화예술계도 감투싸움에 혈안이다. 어중이떠중이 문인, 예술가가 판치는 세상이니 겸은 진흙탕 속에서 보석 찾기 만큼 어려운 군자지도(君子之道)가 됐다.

 지구의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사상적 궁구는 동양사상인 삼재(三才: 天人地)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하늘의 도와 땅의 섭리를 벗어나는 인간의 행동은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에는 심리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이 있다. 심리적 공간은 머리(생각)와 가슴(마음)으로 형이상학적 개념의 공간이다. 물리적 공간은 소유와 공유의 장소적 공간이며 형이하학적 개념의 공간이다. 두 공간에서 일어나는 제반 인간사는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으로 인해 항상 트러블이 발생한다. 집과 땅을 공유의 개념이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정의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로 인해 항상 끊임없는 소유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땅에 대한 소유 욕망으로 다툼이 생기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를 정복해서 영토를 확장하려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것은 인간이 지극히 공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리적 공간에서 느끼는 장소적 여유보다 심리적 공간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리적 공간은 우주의 빈 곳, 장소, 동식물이 생장하는 땅, 공중, 틈새, 사이, 간격, 등등 많은 의미를 함의한 처소이다.

 그러나 심리적 공간은 마음의 공간과 간격으로 여유, 배려, 예의, 태도, 염치 등등의 겸을 함의하는 정신적 공간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대립은 바로 심리적 공간의 여유인 겸의 공간 부족이 배태한 부정적 산물이다. 심리적 공간의 겸이 부족하면 소유의 관념에 집착하게 된다.

 경자년 새해를 맞았지만 나라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시계제로 상태다. 겸의 공간이 부족한 탓이다. 나만 옳고 남은 그러다가는 이분법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칭 지도자들이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오천 년 세월 속에 점철된 오욕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신하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하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라고 올리는 상소와 주청에 화가 잔뜩 났다. 이성계가 평소 술자리를 함께한 책사 정도전에게 `임금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분통을 터뜨리며 묻자 그는 이렇게 짤막하게 대답했다. "전하! 임금은 듣고, 참고, 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국에 가슴을 치며 다가오는 의미심장한 명답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지도자들이 주역 지산겸괘(地山謙卦)의 함의를 십 분의 일이라도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국태민안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공간의 겸이 부족한 우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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