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데모크라시
페이크 데모크라시
  • 이광수
  • 승인 2019.12.08 2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방탄소년단(BTS)이 부른 페이크 러브(Fake Love)가 공전의 대 히트를 쳤다. SNS에서 지금까지 6억 뷰(view)를 기록할 만큼 인기곡이다. 페이크(fake)의 뜻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위장, 거짓, 가짜라는 의미다. 페이크 러브는 가짜 사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사를 보면 진실한(true) 사랑을 위해 가짜 흉내라도 내겠다는 절절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 이는 진실한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가짜로 묘사한 반어법적 표현이다. 그래서 이 노래에 세계의 청소년들이 매료된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저명 문명비평가인 미치코 가쿠타니는 그의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돌베개)`에서 이성보다 감성에 기대는 인간의 태도가 정치화되면서 `진실의 실종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했다. 직관보다 주관이, 사실(fact : 객관)보다 느낌(feeling : 주관)이 찬양받는 시대가 됐으며, 사실에 관심 없는 시민들에 의해 잘못된 정치지도자를 탄생시켜 프로파간다(선전, 선동)가 만연한 가짜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됐다고 개탄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서평을 고정기고 하면서 미국 사회가 곤경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로 `진실의 사망(The Death of Truth)`을 적시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하루 평균 5.9번의 거짓말로 WP, NYT, LAT 등 미국 주력언론을 비난하며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며 중ㆍ일ㆍ한ㆍ유럽 등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관세 폭탄 무역 보복을 전과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주한미군 방위비의 한국부담금을 예년의 5~10배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이 진정 한국의 우방국인지도 의심이 갈 정도이다.


 미치코 가쿠타니는 당파성이 진실을 지운다는 비판에 동조하면서 미 공화당 지지자들 대부분은 트럼프를 옹호하며 결집해 그의 거짓말, 전문성 무시,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이념에 대한 경멸을 합리화한다고 했다. 또한, 그의 조력자들에게는 당파가 도덕성, 국가안보, 재정 책임, 상식, 예의 등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현재 여야가 극한 대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비유해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NYT 아서 설즈버그 발행인은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역할을 트럼프 행정부가 저버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이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언론을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본 따 세계 50여 개국의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하며 언론자유 탄압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영국에서조차 EU 탈퇴(브렉시트)를 주장하며 등장한 존슨 총리의 저급한 막말 파문으로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며 이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개탄할 일이다. 이처럼 트럼프와 존슨 같은 국가 지도자가 미국과 영국에 등장한 것은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역사학자 애덤 투즈는 이와 같은 현상을 1차 세계대전 후 히틀러, 무솔리니의 등장에 빗대어 말한다. 경제적 불만과 불안이 커진 국민들에게 저질 선전ㆍ선동이 수용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막말과 거짓말을 예사롭게 내뱉는 이유는 분노와 증오가 부추기는 갈등현상을 잠재우는 정치 수단인 프로파간다가 먹혀들기 때문이다. 이 정부 후반기 첫날을 맞아 청와대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등 세 사람이 지난 2년 반의 국정 수행 성과에 대한 발표에 대해 여당은 옳소! 라며 환영하는 반면, 야당은 현실에 눈감은 자화자찬성 공치사라고 폄하하는 것을 보면 한국 정치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 예일대 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그의 저서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The Road to Un-freedom : 부자유에의 길, 부키)`에서 `오늘의 권위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온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는 개인주의 대 전체주의, 계승 대 실패, 통합 대 제국, 새로움 대 영원성, 진실 대 거짓, 평등 대 과두제라는 양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면서 가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 239개국 중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20%에 달하고 그와 유사한 가짜 민주주의 체제로 기울고 있는 나라가 태반을 넘는다고 하니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 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전체주의 공산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새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 말이 진부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초강대국들이 자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지난 역사의 잘못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가짜민주주의를 권력유지와 정권쟁탈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해행위와 다름없다 할 것이다.

 가짜가 진짜를 이기는 것은 일순간일지 모르지만 영원성에 기초하지 않은 민주적인 파시즘과 정의로운 포퓰리스트, 법과 절차를 지키는 독재자로 가장한 페이크 데모크라시의 종말이 어떠했는지는 패망으로 끝난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