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의 미각회해 - 망개떡 소고
김영복의 미각회해 - 망개떡 소고
  • 김영복
  • 승인 2019.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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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가야 시대에 백제와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자 서로 혼인을 맺었는데 신부 측인 가야에서 이바지 음식 중 하나로 백제로 보낸 것이 시초`라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망개 잎으로 떡을 싸서 보관, 산속으로 피해 다닐 때 전시 식으로 먹은 것`이 전래되고 있다는 설이 있다. `망개떡`은 가시와모찌[かしわもちㆍ柏餠]라는 일본 음식에서 유래했거나 최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시와는 떡갈나무이고, 가시와모찌란 떡갈잎으로 싼 떡이다. 일본은 5월 5일 단오를 양력으로 쇠고 또 이날이 어린이날과 겹치는데, 이때 먹는 절기 음식이다. 일본의 일부 지방에는 떡갈나무가 없어 그 대용품으로 망개 잎을 쓴다. 이 망개 잎으로 싼 떡도 가시와모찌라 이른다. 일제강점기에 이 가시와모찌가 우리 땅에 이식됐고, 그 흔적은 한반도 여기저기에 존재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 유원지에서 다 팔았다. 기념탑까지 있는 그 지역은, 시장에 맛있는 망개떡 파는 가게가 하나 있어 어느 때에 유명해졌을 뿐이다.

 위 내용은 황모 맛 칼럼니스트가 쓴 내용 중 일부인데, 가야 시대와 의병설은 모 지자체가 기념탑에 쓰인 내용을 인용한 것이고, `가시와모찌라는 일본 음식에서 유래했거나-중략-`라는 내용은 맛 칼럼니스트가 자의적으로 단정하고 쓴 내용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기념비 내용이나 모 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 모두 문헌적 근거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이 설 또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잎(葉)에 싼 떡은 굳이 일본의 가시와모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조선 중기 예학자 사계 김장생(沙溪金長生) 선생이 1685년에 쓴 『가례집람』 통례-사당 편주에 보면 "각서(角黍) 찹쌀가루를 풀잎에 싸 쪄서 만든 떡의 일종으로, 삼각형 모양이며, 옛날에 찰기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각서라고 한다"라고 돼 있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 숙종7 ~ 1763 영조39)의『성호사설』 4권 만물문 각서(角黍)의 내용을 보면 "각서(角黍)란 것은 《풍토기》에 "단오에 줄잎으로 찹쌀을 싸서 먹는 것은 옛날 멱라수(汨羅水)에서 굴원(屈原)의 혼을 조상하던 풍속이다"했다. 우리 풍속도 단오에 밀가루로 둥근 떡을 만들어 먹는데, 고기와 나물을 섞어서 소를 넣은 뒤 줄 잎처럼 늘인 조각을 겉으로 싸서 양쪽에 뿔이 나게 한다. 이것이 바로 각서인데, 옛적에 밥을 서직(黍稷)이라고 했으니, 각서란 것은 밥을 싸서 뿔이 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중략-라고 나온다.

 각서는 북위의 고양 태수 가사협이 편찬한 『제민요술』의 종과 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종)은 줄풀잎에다 기장을 싸서 진한 잿물 속에서 삶아낸 것으로 각서라고도 했다. 열은 찹쌀가루를 꿀로 반죽해 길이 1척, 너비 2촌으로 펴서 넷으로 자르고 이것에 대추와 밤을 아래위로 붙인 다음 기름을 골고루 바르고 대나무 잎으로 싸서 쪄낸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쫑즈를 찹쌀, 쌀, 쌀가루 등으로 삼각형이나 원추형으로 만들어 연 잎 등의 잎으로 감싸서, 짚이나 갈대 줄기 등으로 묶는다. 그런 다음 삶고 가열해, 잎을 벗겨 먹는다. 우리 문헌에 각서는 조선 시대 제사상에도 올렸지만, 단오의 절기 음식으로 즐겨 먹었다.

 한편 이러한 각서가 함경도 지방에서는 가랍나무 잎사귀(참나무 잎)에 수수나 귀리 기장과 같은 곡물로 떡을 해 싼 `가랍떡`, 의령의 `망개떡` 거창의 망개잎을 깔고 찌는 송편, 상주 감잎 방울증편 등으로 분화 발전해 온 것이다. 망개떡은 `가시와모찌`라는 일본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솔잎을 깔고 찌는 송편처럼 망개 잎이나 감잎으로 싼 떡은 잎의 향은 물론 떡을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조상의 지혜가 담긴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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