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3:00 (금)
아름다운 도전
아름다운 도전
  • 이광수
  • 승인 2019.12.0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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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지난 5월 모 종편TV방송국에서 개최한 ‘미스 트롯 콘테스트’ 최종 결선대회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결선에 오른 경쟁자 중에서 선발된 1~5위 5명은 평생 소원한 가수의 꿈을 이뤄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현재 그들은 10~20년간 긴 무명가수의 설움을 털고 인기가수가 돼 전국을 순회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한국의 K-POP은 세계대중음악계의 톱클래스로 성장해 한국의 아이돌그룹에 대한 세계 청소년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BTS, 블랙핑크 등 인기 아이돌그룹이 세계각지를 누비며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을 한껏 높이고 있다. 이제 K-POP은 단지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K-POP문화라는 트렌드로 발전해 한국문화의 세계화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 설치된 세종학당에는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K-POP을 우리말로 따라 부르며 즐길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관심과 문화의 이해를 넘어 자국에 투자한 한국회사에 입사할 목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일종의 코리아 신드롬이다.

 그러나 이런 K-POP의 부상과는 대조적으로 한국대중가요계를 지배했던 기성트롯가수들은 K-POP 아이돌의 기세에 눌려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이처럼 침체된 국내 대중가요계에 ‘미스 트롯 콘테스트’는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수천 명이 지원한 예선대회를 거치면서 트롯가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전국순회공연의 계속으로 트로트 음악의 인기가 급상승한 가운데 이번에 모 종편TV방송국에서 ‘보이스 퀸’ 콘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예선을 거쳐 1라운드 결선에 오른 가수지망생들의 노래실력은 기성가수를 뺨 칠 정도로 수준급이다. 특히 ‘미스 트롯’에 비해 40~60대 출연자들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가수의 꿈을 키우다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꿈을 포기하고 다른 생업에 종사하거나 자녀양육 때문에 꿈을 접은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비록 늦은 나이의 도전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 이분들의 열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중인 중년여성의 열창은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5시간 전에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도 미룬 채 방송 녹화를 위해 면사포를 쓴 채 달려와 김추자의 노래를 열창하는 신혼여성. 미8군 무대에서 40년 동안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63세 멋쟁이 할머니가 신나게 뽑아내는 재즈소울에 열광하는 방청객들. 한 때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다 가정 사정으로 부모의 식당일과 육아로 가수에의 길을 접었던 32세 여성의 꿈을 향한 재도전도 당차다. 가수의 꿈을 키우며 가정을 이뤘으나 이혼의 아픈 상처를 안고 시골로 낙향해 살던 50대 중년 여인의 열창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윤시내의 ‘DJ에게’를 부르고 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혼녀라는 소리가 죽어도 듣기 싫어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혼 후 도시를 등졌다. 그녀는 노래로서 자신의 당당함을 호소한다. 이혼녀가 어쨌단 말인가. 내겐 내 인생이 있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을 살며 자유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 세상을 훨훨 날면서 내 못다 이룬 꿈을 다시 이루고 말겠다고 열창한다.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올 크라운의 합격축포가 울렸다. 이 환호와 박수갈채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화려한 스테이지의 꿈이 무참히 사라진 그녀의 중년인생. 비록 때늦은 도전이지만 그녀의 앞날에 축복의 꽃길만 펼쳐지길 간절히 빈다. 불혹에 이른 가수지망생이 열창 후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폐만 끼친 못난 자식이었지만 사랑을 베풀어 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감사한다며 눈물을 보이자, 방청석의 엄마는 ‘괜찮아’를 연발하며 격려 한다. 재즈보컬로 활동하다 가정 사정으로 가수생활을 접은 중년 여성의 위풍당당한 포스와 재즈 스윙에 청중들은 열광한다. 앞으로 결선경연은 몇 차례 더 계속되고 최종 우승자가 가려질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연초에 있었던 ‘미스 트롯’ 못지않게 또 한바탕 트롯가요 열풍을 몰고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늦었다는 말은 용기 없는 패배자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내뱉는 자기합리화의 핑계일 뿐이다. 이제 우리인생도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사는 시대가 됐다. 나이 들었다고 자신이 젊은 날에 꿈꾸었던 일을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일본에서는 나이 70~80대 여성들이 쓴 소설이 유명 잡지사 신춘문예에 당선돼 베스트셀러 작가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인생은 70부터라고 했듯이 주경야독의 만학으로 석ㆍ박사의 꿈을 이루고, 시니어 패션모델이 돼 젊은이 못지않은 포스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100수인 에세이스트 김형석 교수는 아직도 강단에서 열강하며 매주 신문에 고정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보이스 퀸’ 지망자들의 열창은 가족을 위해 잠시 가슴에 묻어 두었던 한의 노래다. 중년여성들이 못다 이룬 가수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내뿜는 열정은 ‘인생에 늦었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대중가요경연에 참가한 여성분들의 당찬 용기와 아름다운 도전에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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