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9:07 (금)
82년생 김지영, 세상의 `딸들` 위로해주다
82년생 김지영, 세상의 `딸들` 위로해주다
  • 김성곤
  • 승인 2019.10.29 2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심리학 박사/독서치료전문가 김성곤
교육심리학 박사/독서치료전문가 김성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이 가을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가만히 읽노라면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은 없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절절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며칠 전 아이로부터 영화 관람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유효기간이 10월 31일까지라 아까운 마음에 혼자 영화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직장생활로 늘 바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미리 하고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리기는 힘듭니다. 평일 저녁 사람들 틈에 끼여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관람했습니다.

 2016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민음사에서 출판했고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은 가상의 인물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인 듯 영화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여기저기서 숨죽여 우는 소리들이 들렸고 나도 울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와 딸의 역할을 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야기의 중요 인물은 김지영과 그의 어머니입니다.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금의 젊은 세대의 삶의 어려움들을 얘기했다면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는 50~60대 여성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 삶의 고난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지영 어머니가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일을 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주곤 했는데 전쟁 직후인 그 시절에는 웬만한 집의 장녀들은 가정을 위해 그렇게 희생해야 했습니다.

 주인공 김지영(정유미)은 딸 둘 아들 하나 삼남매의 둘째로, 가부장적이고 아들을 선호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지영의 아버지는 외국 출장을 다녀올 때도 아들에게는 만년필을 선물하고 딸들에게는 공책을 선물합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빵은 팥빵인지 아는데 딸이 좋아하는 빵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좋아하는 빵을 모른다고 아버지의 사랑이 작아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살짝 서운하기는 합니다.

 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젊은 세대들이 겪는 육아로 인한 어려움과 경력단절입니다. 혼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그래서 밖에 나가 차 한 잔 마시기도 어려운 상황. 아이 데리고 카페 온 엄마에게 보내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

 나는 영화 속의 지영이가 짠해졌습니다. 나도 딸을 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녀 양육은 부부가, 가족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지영의 남편(공유)은 따뜻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회적 관습과 어려움 속에서 적극적으로 아내를 도와줄 수 없어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행복한 모습으로 끝나서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모로서, 시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시어머니와 장모 역할이 미리 연습하고 공부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가족을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 우왕좌왕하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나는 이 가을의 대추 한 알처럼 그렇게 이유 있는, 또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남겨진 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고맙다 선물도 하고 스스로에게 기특하다 도닥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욕심이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붙잡지 않기를 바라며, 놓을 것은 놓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간직할 것은 마음 가득 소중히 간직하며 살고 싶습니다.

 시간도 아끼고 싶습니다. 남은 생을 내가 원하지도 않은 일로 낭비하지 말 것을 스스로에게 부탁해봅니다. 이 가을 대추 한 알처럼 햇빛을 준 해님과 달빛을 준 달님에게 감사하며!

 그리고 나를 무섭게 흔들었던 태풍과 천둥과 벼락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야물게 둥글게 해주었으니!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가을 감사의 기도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