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1:37 (금)
잊혀질 계절, 가을
잊혀질 계절, 가을
  • 옥은숙
  • 승인 2019.10.01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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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원(거제 3선거구ㆍ농해양수산위) 옥은숙
도의원(거제 3선거구ㆍ농해양수산위) 옥은숙

 가수 이용은 `잊혀진 계절`이라는 히트곡 하나로 정작 자신은 수십 년 동안 잊혀지지 않는 가수로 남아 있다. 다른 곡이 있는지 찾아봐도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 `바람 이려오` 외는 아는 노래가 없다.

 유명한 가수 중에도 이런 경우가 더러 있다. 조영남은 자신의 곡인 `화개장터`, `모란 동백` 외 몇 곡을 베이스로 삼고 수십 개의 번안곡을 더해 지금껏 먹고 사는 셈이다. 10월이 되면 `잊혀진 계절`이 방송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이 되면 켜고 트는 방송마다 마지막 밤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날은 가수 이용의 잔칫날이다. 1982년에 발표했으니 35년째 잔칫날인 셈이다.

 그 노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인 가을에,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는데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녹아 있다. 그런데 이용이 그리워하고 있는 가을에 대한 그리움은 반드시 또 돌아오는 계절성 정서라고 할 수 있으니 시한부인 데 반해, 필자가 오늘 말하는 `잊혀질 가을`은 망각돼 영원히 사라질 항구적인 그리움을 담고 있다.

 기상학자들은 장차 한반도의 기후는 아열대성 온대기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즉 봄과 가을을 도둑맞는다는 말이다. 종전까지는 입추나 처서가 오면 가을이 저만치에서 오기 시작하는데, 여름은 절기에 맞춰서 순순히 물러났고 가을은 제때 와 줬다. 그러나 최근에는 살인적인 폭염 때문에 여름나기가 큰 고역이 됐다. `지구 온난화 현상`을 백과사전에는 `지구 표면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이며 엘니뇨, 라니냐의 기상 변화를 초래하고 오존층을 파괴하며, 지구를 사막화시키고 열대림을 파괴해 지구의 산소의 허파 기능을 약화시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허파가 쪼그라들고 숨이 차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원인은 온실기체 배출 증가에 있다. 화석연료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한편에서는 숲을 파괴해 이산화탄소, 메탄, 프레온가스가 과다 발생한 결과, 온실효과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바다 수온은 지난 100년간의 상승 온도인 0.7도의 2배인 1.2~1.6도가 최근 5년간 상승해 남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 지구 표면의 10%에 해당하는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심각한 재앙은 필연적이다. 100년 이내에 신혼여행지의 천국인 몰디브 섬은 사라진다고도 예측한다. 영화 `내부자들` 중에 이병헌이 한 유명한 대사인 "모히토에서 몰디브나 한잔할까요, 그런데 모히토가 어디 있는거여"라는 언어유희도 더는 안 통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이젠 시베리아 극동지역에서 발생한 산림화재도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됐다. 지구의 빙하시대가 다시 온다고도 하고, 한편 지구가 뜨거운 열기에 고스란히 노출돼 바닷물이 펄펄 끓어오르고 대기의 분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산산이 흩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천문학자와 기상학자들의 관측을 토대로 과학자들이 분석했다고 하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런 과학적인 분석과 예측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나쁜 변화를 체감하며 살고 있다. 다들 대체에너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학교의 옥상에 태양광 패널조차 쉽게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목소리는 작고 희망과 위로의 목소리는 크다. 여태까지 인류가 진화해 온 것처럼, 결국 환경 문제도 극복을 할 것이니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에 솔깃해지는 게 사실이다. 지구의 미래는 과연 희망적일까.

 12년 전쯤, 큰 시숙님의 간 경화가 심해져서 암으로 진행되기 직전인 위중한 상태였던 적이 있었다. 그 급박한 상황의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모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에 입원하셨다는 전갈이 왔다. 평소에 무척 총명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 큰 시숙님의 근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자꾸 여쭤보는 게 혹시 치매가 온 게 아닌가 싶어서 입원을 시키셨다는 것이다. 신경정신과장은 "히스테리 성 일시적 기억상실증으로 보이며 이것은 신경증의 일종으로 자기파괴를 막기 위해 작동되는 방어기제"라고 설명했다. 감정을 억압하다가 결국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억눌린 감정이 쌓여 생긴 병으로서, 큰아들의 병으로 인한 심적 고통이 인내의 한계치를 넘었을 때,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됐다는 설명이었다. 다행히 1주일 정도 지나서 기억을 되찾으셨으며, 그 후 큰 사숙님은 둘째 아들의 간을 성공적으로 이식받아 지금껏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이 사태를 전방위로 확대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다들 크고 작은 히스테리 병인을 갖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자식의 불행을 잊어버림으로써 겨우 자신을 지탱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지구의 비극적인 불행은 잊고자 애를 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일시적인 기억상실 증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중ㆍ고등학교에서 선택하는 `환경`과목의 채택률이 2007년에는 20.6%였는데 2017년에는 9%로 떨어졌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필수과목으로 선정돼도 모자랄 판에 이래도 되는 건지 걱정스럽다. 지금부터라도 환경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편입시키고 닥쳐올 수도 있는 참혹한 지구의 종말을 제대로 설명하자. 다 괜찮다고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게 따로 있지 않은가. 필자도 환경 보전을 위해서 도의원으로 할 수 있는 5분 자유발언이나 건의서 채택, 지원조례 제정 등의 활동으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 스웨덴 출신 16세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이번 9월 23일에 있었던 `기후 행동 정상회의` 유엔본부 연설에서 "내 꿈과 유년기를 빼앗아 갔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환경 감수성은 저절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으며 통찰과 직관의 힘이 체계화되지 않으면 지금의 우리처럼 걱정만 많은 무력한 존재가 된다. 더구나, 가을이 없어지면 가수 이용은 무얼 먹고 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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