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7:07 (토)
김영복의 미각회해 - 벼슬은 자기 재능을 천하 사람 봉양과 바꾸는 것
김영복의 미각회해 - 벼슬은 자기 재능을 천하 사람 봉양과 바꾸는 것
  • 김영복
  • 승인 2019.09.16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조선 초기 제도와 문물이 완성되고 사회가 안정기로 접어 든 시기, 서거정(徐居正ㆍ1420~1488)은 부유하고 고귀한 집안 자제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뛰어난 재능까지 지니고 태어나 일찍부터 인정받았다. 1444년(세종 26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 문과 급제한 후 사재감 직장으로 벼슬을 시작한 이래 성종까지 여섯 왕을 섬기고 48세 대제학이 됐으며, 23년간이나 일국의 문예를 이끌었다. 서거정은 너무나 풍족해 오히려 인생을 망치고, 부유할수록 오만함과 나태함이 스며들며 뻔뻔함이 파고들어 후회 가득한 삶으로 마감하기 일쑤라는 사실을 알고 `사가집` 제1권 조류 `침류조`라는 시를 썼다.

 현 시국에 고위층들이 깊이 음미해 볼 만한 시다. 이 시 외에도 서거정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정사에 임한 사실이 `사가집`을 통해 읽힌다. `철장조`라는 시에서는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동경했는가 하면 `패위조`라는 시에서는 부드러운 가죽을 통해 강경하고 급박한 자신의 성격을 반성하며 고치고자 노력했다. 제주 절도사로 가는 양후를 전송하는 글에서 "탐라의 풍속은 순박하고 예스러워 다른 고을에 비해 다스리기가 쉽다"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스리기 쉽다고 하는 것은, 땅이 좁고 백성이 적어 소송과 부서가 적은 데다가 교활한 아전과 거만한 토호가 붓을 함부로 놀려 법을 농락하는 일이 없다 보니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다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앞에서 말한 교활하게 속임수를 부리는 상선과 어민과 염호들도 쉽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대저 정치란 느슨하면 백성들이 태만하고 다그치면 백성들이 원망하니, 느슨하고 다그치는 것을 잘 살피고 너그럽고 사나운 것을 잘 조절해 다스리기에 쉽지 않다 해야 쉽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또 들으니, 근래에 고을 수령 중에 청렴하고 근실하다고 호가 난 사람이 있는데, 백성들에게 폐가 될까 봐 3년 동안 복어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혹 이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소자가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자기의 재능을 천하 사람들의 봉양과 바꾸는 것이다[君子之仕也 以其才易天下之養]` 했으니,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게 한다면 비록 백성을 힘들게 해 자신을 봉양하더라도 지나친 일이 아닌데, 하물며 한 마리 복어가 청렴에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작위적인 행동이 아니겠는가. 만약 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굶주린 백성은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목마른 백성은 마실 수 있게 해 주며, 비쩍 마른 사람은 살찌게 해 주고, 추위에 떠는 사람은 따뜻하게 해 준다면 날마다 100마리의 복어를 먹은들 백성에게 무슨 해가 되겠는가. 반면에 만약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목말라도 마시지 못하며, 비쩍 말라 살이 찌지 못하고 추위에 떨어 따뜻하지 못하다면 한 톨의 곡식조차 먹지 않은들 백성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라고 했다.

 국록은 백성의 고혈이다. 국록을 먹는 자들은 국가에 헌신하고 백성들에게 겸손해야 한다. 백성의 고혈인 국록을 받는 자들이 백성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자신의 영달이나 진영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위해 하는 것이다. 정치(政治)를 파자하면 다스릴 정(政)은 `올바를 정 `자와 `치다 복` 즉 `고치다 복`자로 구성돼 있으며, 다스릴 치(治)는 `물 수`와 `나 태`로 돼 있다. 여기서 `나 태`는 말하는 이가 자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말로 하는 정치는 스스로부터 올바르게 고쳐 나갈 때 백성들이 물 흐르듯 따라가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