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21 (토)
남명 선생의 사직 상소문에 대한 소고
남명 선생의 사직 상소문에 대한 소고
  • 이광수
  • 승인 2019.08.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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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본관이 창녕으로 연산군 7년(1501년)에 태어나 선조 5년(1572)에 돌아가셨다. 조선 중기 대유학자로 영남학파의 거두였다. 선생의 행적은 `남명선생문집`과 여러 저서에 남아있다. 최근 `조선이 버린 천재`(이덕일, 옥당)란 책을 읽고 남명의 고결하고 추상같은 학자적 기개와 민본사상의 뿌리를 엿볼 수 있었다.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남명 선생은 진사, 생원 급제 후 대과 문과 초시를 통과했으나 회시에 낙방하자 벼슬길을 접고 초야에 묻혀 학문증진과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선생의 학문적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경향 각지의 유생과 학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왔다. 남명 사상의 지표는 경(敬)과 의(義)로서, 그의 칼에 새긴 검명(檢銘)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의내명자경 외단자의(義內明者敬 外斷者義)`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해 수양의 기본으로 삼고, 의로써 외부생활을 바르게 실천한다`는 뜻이다. 그의 학문 사상은 성리학의 실천궁행으로, 불의한 임금에게 경과 의를 지키라고 상소로 간언했다. 선생은 당시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와 외척 윤형원을 비롯한 척신들의 국정농단으로 민심이 도탄에 빠지자 <단성현감 사직 상소문>을 올렸다. 명종임금과 문정왕후를 비롯한 척신들의 횡포를 규탄하는 폭탄 같은 직언 상소였다. 임금이 내린 벼슬을 사양하고 임금의 잘못과 왕후 척신들의 비정을 정면으로 공박했으니 간신들이 그를 가만 둘리 있었겠는가. 그러나 초야에 은거한 선비의 사직상소를 문제 삼아 벌하면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만들게 될 것을 두려워해 죽이지는 않았다. 명종의 무능과 외척 간신 모리배들의 비정은 물론, 수렴청정하는 문정왕후를 궁중의 일개 과부일 뿐이라고 질타했으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임금과 그 척신들을 향해 직격탄을 퍼부은 남명 선생의 배포와 기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즉사 사즉생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여기 선생의 <단성현감 상소문> 일부를 전재한다. "천하의 국사가 이미 잘 못하고 나라의 근본이 망해 하늘의 뜻과 인심도 떠났습니다… 작은 벼슬아치들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며 주색잡기나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위에서 어물거리며 오직 재물만 불립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신은 이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길게 탄식하며 낮에 하늘을 우러러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탄하고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밤에 멍하니 천장을 쳐다본 지 오래됐습니다… 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니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백가지 재해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하며,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명종실록, 명종 10년 11월 19일). 남명선생이 이렇게 통분의 심정을 사직상소로 올린 이면에는 선생의 문하생이자 동도였던 병조참의 이림, 사간원 사간 곽순, 지기 성운의 형 성우의 사사와, 양재혁 백서사건에 연루돼 죽임을 당한 친구 송인수에 대한 울분의 토로였을 것이다. 간신 윤원형과 그 일당들에 의해 자행된 을사사화로 수많은 중신과 학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참극에 대한 통분의 발로이기도 하다. 남명선생은 자신의 사상 본류인 경과 의가 명종대의 정치와 어긋난다고 보았다. 하늘의 뜻인 경의(敬義)는 곧 백성의 마음인 민심(民心)이었다. 그의 상소도 서경(書經) 소고(召誥)의 `백성의 엄험함을 돌아보아 두려워하소서`란 글에서 나온 민암(民巖)으로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고, 나라를 뒤엎어 버리기도 한다`는 경(經)의 비유이기도 하다. 남명선생이 간한 상소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시대정신이다.

 얼마 전 정부 2기 내각 구성을 위한 중폭의 장관급 인사내정이 있었다. 10명 중 7명의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곧 열릴 것이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청와대 요직을 그만두고 서울대 법학전문대교수로 복직한 지 며칠밖에 안 된 모후보자이다. 그는 교수의 정치참여를 프랑스식 앙가주망으로 자기합리화했다가 재학생들과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장관지명 후 기자회견을 하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니, 주역 `지산겸(地山謙)`의 괘사와 사기열전 `회음후 열전`에 나오는 한신의 고사가 떠올랐다. 겸손과 자기성찰이 부족한 오만한 자에 대한 역사적 교훈이 담겨 있는 고전이다. 이번에도 장관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불법 재산증식과 세금면탈, 부정한 병역면제, 논문표절 시비, 자녀 이중국적, 경도된 사상과 편향적 시국관, 부적절한 사생활 등이 중점적으로 검정될 것이다. 언론에는 벌써 몇몇 후보자들의 불법 재산증식과 과거 행적들이 속속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 문자 그대로 청문일 뿐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와는 상관없다. 과연 이런 형식적인 청문 절차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내로남불과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 자들에겐 민초들의 목소리는 우이독경이요 마이동풍일 뿐이다. 경과 의가 사라진 참담한 정치 현실을 지켜보면서 남명선생이 남긴 `사직 상소문`의 함의를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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