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02 (금)
손톱 헬멧
손톱 헬멧
  • 은종
  • 승인 2019.08.15 2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은종 시인,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은종 시인,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마치 손톱에 갑옷을 입힌 것처럼

입체적인 美의 투구가 시선을 끈다.

서로서로 이음새로 이어가는 촉각과

시각과의 소통이라고도할 수 있겠다.

 담장 아래 피어있는 봉선화가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영토를 확장해가고 있다. 동네 여자애들의 멋 부리고 싶은 간절한 열망만큼 진하게 녹아내려 너나 할 것 없이 여름을 물들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

 네일 마니아들로 붐비는 살롱은 언제나 봐도 아기자기하고 화려하다. 봉선화 색깔은 단조로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핑크빛, 주황빛, 붉은빛으로 변하는 게 전부라면 네일아트는 크기와 모양 색상 등이 다채롭다.

 네일아트의 역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래됐다고 한다. 고대인들은 신분에 따라 색상이 달랐다고 하는데 꾸미고 물들이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했나 보다. 일상의 시간을 정지시켜 미를 창출해 내는 네일아트라는 직업이 꽤 매혹적인 것 같다. 가장 작은 공간인 손톱 위에서 창작의 예술을 빚어 현란한 탑을 쌓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논하는 현대판 매끄러움의 미학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마치 손톱에 갑옷을 입힌 것처럼 입체적인 美의 투구가 시선을 끈다. 서로서로 이음새로 이어가는 촉각과 시각과의 소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예술품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고 만다. 기념비적인 것도 수명이 겨우 한 달간이라는 것이 아쉽다.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다 보면 손톱의 수난 시대도 올 것 같다. 그래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머리에 쓰는 헬멧처럼 쓰고 벗기를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면 어떨까 싶다.

 얼마 전, 어머니의 등을 긁어 드렸다. 평소 현악기와 건반악기를 다루는 필자는 손톱에 아트를 입힌다는 것은 금물이다. 야외에 가셨다가 벌레에 물려 가려운 데를 긁고 싶어 아버지께 부탁했더니 대강 긁어 주신 모양이다. 엄마 등에 바짝 붙어 가려운 부위가 어딘지 살피는데 금방 알 수 있었다. 효자손도, 아버지의 손도 성에 차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손끝이 아닌, 손톱 끝으로 긁어드렸더니 "아이고, 시원타" 되뇌신다. 마침 그날 아침에 손톱을 깎은 상태라, 엄마의 가려운 등을 긁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평소에 네일아트를 하고 다녔다면 엄마의 등 긁기는 실패했을 것이다. `자연산 손톱`이 필요한 경우는 식사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견고한 실리콘에 의해 부착돼 있다 하더라도 반찬을 만드는 도중에 미세한 장식품들이 떨어져 나가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네일아트 산업에 뗐다가 다시 부착하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 출시된다면 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짧게 깎은 딸의 거친 손톱 끝이 엄마의 등을 긁고 있는데 창문 사이, 둥근달의 어깨 위로 별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