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위국헌신 늦게라도 인정받아 다행”
“독립운동가 위국헌신 늦게라도 인정받아 다행”
  • 이문석 기자
  • 승인 2019.08.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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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ㆍ경남독립운동연구소 발굴 윤덕룡ㆍ이경재ㆍ국채진 선생 3분 광복절 맞아 정부서훈 추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하동출신 윤덕룡 선생 생전 모습.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하동출신 윤덕룡 선생 생전 모습.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발굴ㆍ포상 신청한 하동출신 독립운동가 윤덕룡(尹德龍ㆍ영철ㆍ1906∼?), 이경재(李敬載ㆍ1907∼1970) 선생과 전남 담양출신 국채진(鞠埰鎭ㆍ1901∼?) 선생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서훈이 추가로 추서된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이번 광복절에 하동출신 2명과 전남 담양출신 1명이 추가로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각각 추서 받는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광복절의 독립유공 정부서훈자는 하동출신 5명, 광주ㆍ전남출신 20명 등 25명으로 늘어났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지난해 3월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ㆍ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군내지역 미발굴ㆍ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하면서, 지난해 4월 읍ㆍ면사무소 문서고 등에서 발굴한 하동출신 독립운동가 2명과 2009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광주3ㆍ1만세운동 참여자 1명이 정부 포상자에 추가로 포함됐다고 밝혔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하동출신 윤덕룡(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603) 선생은 1930년 신간회 경성지회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1931년 서울에서 반제국주의 비밀결사 재건활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경성지방법원에서 김복남, 태명옥, 허정화 등과 함께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40년 5월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으로 이주했다.

 대통령표창을 받는 이경재(하동군 화개면 삼신리 624) 선생은 1928년 7월 하동군에서 삼선노동야학회 강사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돼 징역 6월,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건국포장을 받는 국채진(전남 담양읍 양각리) 선생은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께 광주 부동교(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 아래 작은 장터에서 김강ㆍ김철ㆍ최병준ㆍ최한영 등과 숭일학교ㆍ수피아여학교ㆍ광주농업학교 교사 및 학생 주민 1천5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같은 일로 주동자 김강ㆍ김철ㆍ홍순남 등 가담자 대부분이 체포됐다. 이때 선생도 체포돼 징역 4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이후 1929년까지 광주에서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 간부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정재상 소장은 “광주3ㆍ1독립운동가를 발굴한지 10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며 “그동안 서훈을 위해 청와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청원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위국헌신이 늦게라도 인정받아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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