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1:09 (토)
휴가 떠나기 전
휴가 떠나기 전
  • 은 종
  • 승인 2019.08.06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은종 시인,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은종 시인,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집을 비운 사이에도
꽃을 피우기 위해
햇볕을 온 몸으로 맞는
식물의 고사 막으려면
작은 관심과 정성을

 휴가차, 며칠 집을 비우는 동생이 부탁하고 떠난다. "언니, 이틀 후쯤 우리 집 꽃들 물 좀 적셔 줘" 나 못지않게 꽃 가꾸기가 취미인지라 온갖 꽃들이 베란다, 거실을 둘러치고 있다. 폭염이 시작돼 낮에도 밤에도 더위는 가실 줄 몰라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꽃들에 신경이 쓰인다. 약속된 날 아침 일찍, 눈을 뜸과 동시에 동생 집으로 갔다. 매번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오늘은 주인 없는 대문에 가스 검침표가 정적을 주시하는 깃발처럼 붙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행여 비바람이 몰아칠까 봐 양쪽 큰 창문을 다 닫아둬 실내 온도가 상승해 있었다. 곧바로 창문부터 열었다. 올망졸망 붙어있는 다육이들이 소리 없이 `답답해요, 물 좀 주세요` 외치는 듯하다. 거실에 서 있는 키 큰 종려죽, 행복 나무 등에는 벌써 목마름의 군살이 박혀있고 바이올렛은 장독 위에서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산세베리아와 스투키는 평소 물을 머금고 살이 통통 올라 여유로워 보여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호, 만냥금은 지난겨울 맺힌 빨간 열매들이 아직 그대로 달려 있어 더위를 잊은 듯하다. 깔끔한 주인의 손놀림으로 천장으로 뻗쳐 올라간 호야꽃의 너울거림, 그 끝자락에 보석들이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호야는 몇 년을 애지중지 키워야 만이 꽃을 피운다던데 가히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빛이 따로 없었다. 일전에 신비로운 호야꽃에 대한 시를 읊었던 게 떠올랐다. 그 외 베란다에 있는 각종 꽃식물을 분사기로 시원하게 샤워 시켜 주었더니 이내 파릇파릇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사람도 식물도 무더운 여름을 나기엔 물이 필수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다음 조카 방을 들어갔더니 냄새만으로도 그리움이 훅 전해져 온다. 구르는 낙엽만 뒹굴어도 깔깔대는 사춘기라는 캘리그래피로 써 놓은 팻말이 방문에 부착돼 있었다. 다음으로는 안방, 서재를 둘러보고 동생의 깔끔한 성격이 집 안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제 누가 불시에 방문해도 서둘러 정리정돈 안 해도 될 만큼 평소 이렇게 해 놓고 살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나가기 전,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다음 차례 물 주기 당번을 위해 글을 적었다. 동생의 지인이다. 그녀가 이 아파트 문을 열기 위해선 두 차례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아파트 동의 전체 현관 비밀번호, 그다음 동생 집 비밀번호. 물론 친한 사이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들어와 약간의 수고로움을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남겨놓고 가야겠다. "00 님, 실내에 있는 식물들과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은 목말라하네요. 물을 흠뻑 주시고 다육이들은 그냥 눈웃음 정도만 보내주셔도 무방할 것 같아요, 잠시 머무는 동안 양쪽 창문은 열어두시고 가실 때 다시 닫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냉장고 안, 과일이 시식하실 분을 기다리고 있네요. 좀 드시면서 하세요, 고마워요. 하트 두 개" 이렇게 메모를 남겨두고 나왔다.

 집을 비우는 사이, 애지중지하던 식물들을 고사시킨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하루 이틀 많게는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시들해져 버리기 일쑤, 고개를 가누는 일이 힘들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평화는 잠자듯 고요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활동하면서 스미게 하는 것이다. 작렬한 햇볕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동안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고 실내의 좋은 공기 흐름을 위해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소리 없는 활력소들. 휴가철, 주인만을 기다리며 해바라기 하고 있는 그들에게 관심 어린 `한 표` 부탁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