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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끝난 어느 정치인의 삶
비극으로 끝난 어느 정치인의 삶
  • 소설가 이광수
  • 승인 2019.07.2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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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모 전 국회의원이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선 국회의원으로서 한때 최고 통치권자의 핵심실세로 떠오른 정치인이었기에 권력 무상을 절감한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 때문에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후 지난 총선에서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감탄고토의 권력 속성을 거부한 소신은 결국 권력의 변방에서 방황하는 정치이방인으로 머물게 했다. 권모술수와 온갖 뒷거래가 오가는 정치판은 복마전이나 다름없다. 잃어버린 권력에로의 권토중래를 꿈꾸며 와신상담했지만 한번 떠난 정치풍향계는 끝내 그의 편으로 불지 않았다. 권력의 마법에 취한 정치인들은 마약중독자처럼 자아도취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선거철만 되면 계절병처럼 도지는 정치열병은 끝내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런데도 허망한 권력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아이러니다. SNS를 달구는 퇴물이라는 오명과 애 보러 가라는 따끔한 충고도 그들에겐 소귀에 경 읽기다. 식물국회로 전락한 우리 정치의 현실은 영혼 없는 정치 철새들이 조장한 악습의 산물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에겐 자신들과 아무 상관 없는 고언이다. `이제 당신은 아니다`라고 남들은 말하는데 자신만 애써 그 말을 무시한다. 민심의 바닥을 한번 훑어보면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금방 알 수 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민심이 어떻게 자신을 평가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리수를 쓴다. 자신을 부정 부패한 자로 보는지, 함량 미달자로 보는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하는지 왜 모를까. 물론 정치 권력의 끄나풀을 잡고 이권이나 한자리를 노리는 사이비 정치바라기들의 부추김에 귀가 솔깃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름 정신 상태가 올바른 주변 지인들의 냉정한 평가에 귀 기울여보면 결론이 나온다. 전직 관선 지자체장들이 민선 자치 시대를 맞아 출마 여부를 놓고 민심 동향을 물었을 때 나는 칼같이 냉정하게 평가해줬다. 오랜 기간 일선 공직자로 근무해 보면 민심의 바닥을 훤히 꿰뚫어 볼 수가 있다. 정치에 병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증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착각에 빠져있다. 선거 출마자들과 대화해보면 그들 의중에는 이미 당선을 훨씬 넘는 예상 득표수가 나와 있다. 학연, 지연, 혈연, 직장 인맥, 종교 인맥, 사회단체 인맥 등을 자기 표로 간주해 당선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지역 단체장 선거 때 각 후보자의 예상 득표수를 물어보면 그 지역 유권자 수보다 몇 배 많은 수치가 나온다. 착각은 자유지만 망상은 금물이다. 선거가 끝난 후 자신과 주변 조력자들이 겪게 될 심각한 정신적 물질적 후유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애당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무경십서의 삼십육계 병법이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치고 사후 전 국민으로부터 국부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지도자가 한 명도 없는 나라는 아마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물론 한두 분은 지역과 세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정치사 70년의 파란만장한 부침 속에서 권력투쟁의 패자로 전락한 수많은 정치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정치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마법에 걸린 정치꾼들에겐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다. 영국속담에 `정치하는 집안과 사돈 관계를 맺지 말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영국에서조차 이런 격언이 생겼다는 것은 정치판이 얼마나 표리부동의 복마전인지 증명하고 있다. 지금 여야가 극한 대치상태에 있는 불통의 한국 정치 현실을 보면서도 한물간 정치꾼들은 권력에의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신분석심리학자들은 어떤 진단을 내릴까. 아마 권력 집착증 내지 과대망상증으로 진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인의 DNA 속에는 이조 5백 년을 지배해온 사농공상이라는 반상 차별의 관존민비 사상이 역사적 유물로 엄존하고 있다. 요즘 공직에 입문하려는 젊은이들이 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보도를 보니 오히려 기업 쪽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해 안달이라고 한다(계획 인원의 70% 충원). 연구하고 창조하며,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는 힘든 기업보다, 목에 힘주며 편안하게 시간만 때우면 월급 받고 연금 받는 공직에 인재가 몰리기 때문이다. 민선 자치 시대는 행정가가 정치인이 되고 정치인이 행정가가 되는 세상이니 공직 열풍의 고공행진은 쉬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21세기를 맞아 산업생태계는 급변하고 있으나 오랜 관습과 전통으로 굳어진 국민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자리 노리는 철새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벌써부터 부산하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치열한 진흙탕 싸움은 한 정치인의 비극적인 죽음과는 상관없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권력 무상은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고 착각하는 철새정치인을 정리하는 칼자루는 유권자인 국민이 쥐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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